
이란전은 내용도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더 실망스러운 건 대표팀을 이끄는 수장의 인터뷰였다.
한국이 12일(한국시간)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끝난 이란과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4차전에서 0-1로 무릎을 꿇었다. 변명의 여지없는 완패였다.
경기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감독은 “이란이 잘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전반 30분은 실망스러웠다. 후반에는 팽팽했지만 전반 30분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후반전이 팽팽했는지 의아하지만 어쨌든 그도 완패를 시인했다.
하지만 패인을 분석할 때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에 김신욱을 투입해서 득점 루트를 만들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우리에게는 카타르 세바스티안 소리아 같은 스트라이커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 한다”고 답했다. 소리아는 우루과이 태생으로 카타르로 귀화한 선수다. 지난 6일 한국과 경기에서도 1골을 넣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힘과 기술을 고루 갖춘 유형의 공격수가 한국에 없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적절치 않은 발언이었다. 한국은 이날 소리아 아니라 어떤 공격수를 갖다 놔도 철저히 고립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시종일관 무기력했다. 당장 팬들도 ‘골대 앞에 가지도 못했는데 좋은 공격수는 무슨’ ‘손흥민을 두고 소리아가 없어서 졌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발끈했다.
이란 원정에서 2무5패, 최근 이란전 4연패 등 이란에 약한 원인을 짚을 때도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다. 그는 “우리가 이란 선수들에 비해 신체적인 면에서 약하다. 좋은 플레이를 하면서 극복해야 하는데 유소년 단계서부터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너무나 당연한 공자님 말씀이다. 하지만 월드컵 진출이 걸린 최종예선 경기가 끝난 뒤 감독이 할 말은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의 유소년 문화를 바꾸는데 일조하는 것은 반갑지만 그의 주 임무는 한국을 러시아 월드컵에 데려가는 것이다. 누구의 말을 빗대자면 월드컵 뿐 아니라 최종예선도 증명하는 자리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7일 이란으로 출국할 때부터 ‘설화(舌禍)’로 구설에 올랐다.
전날 카타르에 3-2 역전승을 거뒀는데도 여론이 다소 비판적이자 “이런 분위기면 이란에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고 섭섭한 감정을 토로했다.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었다. 전쟁터로 떠나기 전 장수가 장병들 사기를 꺾어놓은 거나 다름 없었다. 여기에 더해 졸전 끝에 무릎을 꿇은 뒤에는 패배 원인을 선수들에게 돌리는 듯한 뉘앙스까지 풍겼으니….
귀국 인터뷰 때는 슈틸리케 감독의 태도가 변해있길 기대한다.
그는 지난 달 26일 국가대표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경기가 끝난 직후의 느낌과 차분히 영상을 다시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다르기 마련이다”며 지난 달 6일 시리아전(0-0 무)이 끝난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했던 발언 몇 가지를 정정했다. 이번에도 차분한 마음으로 이란전을 꼼꼼히 복기해 본다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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