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임기 말이면 등장하는 레임덕(권력누수)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들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레임덕의 발현 조건으로는 대통령 지지율의 지속적인 하락, 친인척 및 측근의 비리, 정부 정책ㆍ인사에 대한 여권 내부의 반대, 기밀 정보의 유출, 차기 유력 주자군의 활발한 활동 등이 꼽힌다. 최근 여권을 둘러싼 상황을 보면 상당 부분 이런 조건들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측근 실세의 개입 의혹이 불거진 미르ㆍK스포츠재단의 거액 모금 의혹뿐만 아니라 고 백남기 농민 사인 논란, 개헌 등의 주요 현안에서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5선의 비박계 정병국 의원은 최근 미르ㆍ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최순실ㆍ차은택씨의 국감 증인 채택 필요성을 거론했다. “최순실이 누구길래 (야당은) 그렇게 목을 매냐”(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도부 내 기류와 다른 의견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대선 주자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은 백남기 농민 사망에 대해 “정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청와대가 탐탁잖아 하는 개헌론이 원내사령탑인 정진석 원내대표의 입에서 연일 나오고 있다.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권력이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며 “통합진보당 해산 빼고는 잘한 게 없다는 장문의 메시지를 전통적인 보수 지지자한테 받았는데 상당히 수긍했다”고 말했다.
기밀로 다뤄야 할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느슨함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국가정보원의 박 대통령 퇴임 후 사저 매입설을 제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위 의혹이 언론에 제기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보는 해석이 많다.
차기 주자의 움직임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민생 탐방 재개, 남경필 경기지사는 이슈 선점, 유승민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은 강연정치로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20%대로 떨어지고, 특히 텃밭인 대구ㆍ경북에서도 부정평가가 크게 나타난 것은 레임덕의 전조 현상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 들어 대통령과 거리를 두거나 각을 세워왔던 역대 여당과 달리 현 지도부는 오히려 청와대 비호를 강화하고 있어 아직 레임덕을 말하기는 이르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당 관계자는 “당심은 친박 편이라는 게 전당대회에서 증명됐고, 유력한 차기 주자도 정해지지 않은 데다 대통령 지지층도 견고하다”고 말했다.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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