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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시행 5년 러시아판 ‘김영란법’의 효과

입력
2016.10.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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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을 막겠다는 취지의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벌써 주변에서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이제 동료들끼리 회식을 하면서도 밥값을 각자 내는 경우가 늘고, 비즈니스 파트너가 공공기관 관계자, 교사, 교수일 경우, 커피 한 잔만 건네도 처벌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선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한국 사회 고유문화가 파괴된다는 보도까지 본 적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연 그 정도로 심하게 단속할까 하는 생각도 있다. 과연 부패를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간하는 부정부패지수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15년 기준으로 38위를 차지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권이지만 전 세계를 기준으로 봤을 때 그렇게 낮은 자리가 아니다. 미국은 17위, 일본은 20위, 중국은 84위, 러시아는 121위다. 주목할 점은 러시아에서 ‘김영란법’과 비슷한 법률인 ‘공무원 선물 금액 제한법’이 도입된 지 5년이나 지났음에도 러시아의 투명성 순위를 보면 그 법의 효과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러시아 판 ‘김영란법’은 왜 효과가 없었을까. 러시아에서는 공무원, 공공기관, 정부기관 등 직원들이 3,000루블 (약 5만2,000원) 이상 선물이나 대접을 받을 수 없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 선물의 가치가 이 금액을 초과하면 이를 바로 신고해야 하고, 그 선물은 국가소유가 된다. 이처럼 러시아판 김영란 법이 강력한 처벌 조항을 갖추고 있어도,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이 법 위반에 대해 눈을 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일반 서민들은 동사무소 같은 정부기관에 가서 자기 민원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처리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초콜릿이나 비싸지 않은 술을 주는 게 구소련부터 내려온 보편적 관행인데, 이렇게 주는 선물은 비싸도 3,000루블을 넘지 않으니 서민들은 뇌물성 선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또 신호위반이나 불법주차와 같은 가벼운 교통위반에 대한 과태료도 대부분 3,000루블이 안 넘기 때문에 단속에 걸리면 범칙금을 내는 대신 경찰관에게 뇌물 조로 현금으로 주는 경우도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렇다면 이 법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서민들의 ‘일상적 비리’가 아니라 고위층의 부정부패다. 하지만 대기업이 정부에 부정한 방법으로 로비하거나 정부 내 재정 횡령, 국가소유 기업의 불법 민영화와 같은 고위급 연루 범죄 역시 이 법으로 제대로 통제가 안 된다. 그래서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이 법 무용론을 주장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 법을 통과시킨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이 법의 첫 위반자라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2010년 법이 시행된 직후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이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서 그 당시 최신 스마트폰을 선물로 받았다. 이를 놓고 러시아 네티즌들은 누가 봐도 가격이 3,000루블은 넘는 스마트폰을 메드베데프가 왜 거절하지 않았는지, 또 신고는 했는지 비판하는 댓글을 쏟아냈다.

영업을 하는 내 주변 한국 동료들은 한결같이 김영란법에 반대한다. 사무실보다 회식자리에서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한국 특유 문화가 존재하는 한 고가 회식을 금하는 이 법이 심각하게 활동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볼 때 개인적으로 한국에서도 러시아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당장 일반 서민들은 행동을 조금 더 조심해야 하겠지만, 대기업과 정부 관계 등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석연치 않은 거래 관행에 대해 과연 김영란법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일상적 비리’를 광범위하게 통제하는 법을 대부분 OECD 국가가 갖추고 있는 만큼, 김영란법 발효를 계기로 한국 법률 시스템도 분명히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란 점이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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