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성 자본 유입 영향” 분석도
러시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생산량 감축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국제유가가 1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실질적인 감산 의지를 다시 강조하고 있어,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유가가 60달러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11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0일(이하 현지시간) 런던 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 12월 인도분이 전 거래일보다 1.21달러(2.3%) 오른 배럴당 53.1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8월31일(54.15달러) 이후 1년 1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가격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54달러(3.1%) 상승한 배럴당 51.35달러로 장을 마감하며 지난해 7월15일(51.41달러)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날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1.17달러 하락한 48.90달러였다. 브렌트유와 WTI의 거래 동향이 두바이유에 반영되는데 통상 하루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바이유 역시 오름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등의 영향으로 30~40달러대에 머물던 유가는 지난달 말 OPEC의 감산 합의로 상승세를 탔다. 여기에 10일 터키에서 열린 세계에너지총회(WEC)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이 가속도를 붙였다. 그는 WEC 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원유 생산을 제한하는 공동 조처에 동참할 준비가 돼 있다”며 “석유 수출국들의 동참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OPEC 비회원 산유국인 러시아가 OPEC의 감산에 동참할 뜻을 분명히 하면서 다른 OPEC 비회원 산유국들의 동참 가능성도 높아졌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도 WEC에 참석해 “OPEC 비회원국들도 공급과잉을 줄이기 위해 감산에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며 “올해 말까지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까지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밥 더들리 최고경영자(CEO)도 OPEC 회담의 영향으로 올해 말 유가가 배럴당 55~6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OPEC과 러시아의 감산 ‘말 잔치’에 시장이 예상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OPEC이 국가별 감산 규모를 구체적으로 배분하는 11월 말까지는 감산 여부를 확신하기 쉽지 않고, 일부 산유국이 감산량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합의 자체가 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보통계센터장은 “저유가와 공급과잉 등의 영향으로 세계 원유 재고량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며 “그런데도 최근 유가 상승이 이어지는 건 감산 합의 외에 투기성 자본 유입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감산량 합의가 이뤄진 뒤 투기성 자본이 차익을 챙겨 썰물처럼 빠져나갈 경우 감산에 따른 유가 상승폭이 시장의 기대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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