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진동시켜라. 어스퀘이크(지진ㆍearthquake)!”
11일 오후 지진체험교육을 앞둔 서울 도봉구 경일어린이집 열매반 41명의 눈이 일순간 반짝였다. 아직 재난 개념조차 생소할 다섯 살 아이들의 주의를 단번에 사로잡은 것은 요즘 선풍적 인기의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의 전투 기술. 이날 터닝메카드 주인공으로 변신한 인물은 다름 아닌 서울 광진구 광나루안전체험관의 ‘웃음 전도사’ 정경진(39) 교관이다.
이곳에서 재난대응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정 교관은 교육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주로 유명하다. 어린이부터 주부, 노인, 외국인 등 하루 평균 안전체험관을 찾는 500여명의 교육생은 정 교관의 설명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그는 어린이들 앞에선 유명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지만 나이 지긋한 교육생들 앞에서는 창과 트로트, 살사춤과 슬랩스틱도 불사한다. 정 교관은 “기왕이면 흥미로운 교육, 재미있는 재난 체험을 교육생들에게 선사하고 싶어 평소에도 연구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을 들은 서울 수서초등학교 이지형(31) 교사는 “재난 교육의 효과를 높이려면, 학생들이 재미를 붙이는 게 중요한데 아이 수준에 딱 맞는 설명으로 교육 효과가 높다”며 감탄했다.
언뜻 보면 수년의 경력을 쌓은 노련한 교관 같지만 사실 그의 전공은 응급구조다. 2001년 구급대원이 된 후 15년 동안 현장을 누비며 항상 긍정적 업무 자세를 유지해 교관이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률과 개인 사정 탓에 보직 변경은 쉽지 않았다. 정 교관은 “세 아이의 엄마인 데다 남편도 구급대원이라 욕심만 부릴 일이 아니었다”며 “뒤늦게 미국심폐소생협회에서 심폐소생교육 자격증을 따는 등 차근차근 준비한 끝에 지난해 7월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관은 최근 제대로 된 재난대응 매뉴얼을 가르치는 데 더욱 힘을 쏟고 있다. 경주 지진과 태풍 ‘차바’ 등 위력적인 재난이 잇따르면서 매뉴얼 위주의 이론 교육은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결국 다양한 재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우선 개인의 올바른 판단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교관은 “경주 지진 당시 대피한 시민들이 공터로 피하지 않고 건물 주위에 모여있는 장면을 TV로 접하고 ‘아차’ 싶었다. 그 뒤로 실제 재난대피 사례를 모으기 위해 외신까지 꼼꼼히 챙겨 교육에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정 교관은 재난대응 교육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형식적인 교육 같지만 교육생들에게 재난과 맞닥뜨리면 혼자 피하지 말고 ‘불이야!’ ‘지진이야!’라고 외치라고 가르쳐요. ‘초인종 의인’ 안치범 씨가 수많은 이웃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글ㆍ사진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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