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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마다 은빛 억새 물결…가을이 더 아름다운 제주

입력
2016.10.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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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가리켜 오름의 왕국이라고 한다. 삿갓 모양을 한 한라산과 더불어 그 사면에 368개에 달하는 오름을 거느리고 있다. 이것은 단일 화산이 갖는 단성화산(한 번의 분화 활동으로 생성된 화산)의 수로는 세계최대이다. 좁은 면적에 이처럼 많은 오름이 산재한 곳이 없기에 제주의 대표적인 자연경관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제주 가을 풍경의 백미는 오름마다 풍성한 은빛 억새
제주 가을 풍경의 백미는 오름마다 풍성한 은빛 억새

오름은 ‘오롬’이라고도 불리는데 자그마한 산을 말하는 제주도 방언으로서 한라산 기슭에 개개의 분화구를 갖고 있는 소화산체를 의미한다. 그 어원은 행동을 나타내는 동사인 ‘오르다’에서 명사형인 ‘오롬, 오름’으로 변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질학에서는 분화구를 갖고 있고, 내용물이 화산 쇄설물(부스러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산구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소화산체를 일컫는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의 생성을 설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설문대할망이 있었는데, 그 몸집이 얼마나 컸던지 치마폭에 흙을 담아 한라산을 만드는 과정에서 치마의 찢어진 구멍으로 떨어져나간 한 움큼씩의 흙이 오늘날의 오름이라는 것이다.

오름은 봄 꽃의 연분홍, 여름의 초록, 가을억새의 은빛, 겨울의 갈색 등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느 계절의 오름이 가장 아름다울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은빛 억새가 뒤덮인 가을을 선호한다. 가을 오름은 은빛으로 물들인 억새와 더불어 바람 많은 섬 제주의 특징까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 제주는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며 오름에도 억새 꽃 물결이 장관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억새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운 오름으로는 단연 따라비오름이고, 뒤이어 아끈다랑쉬, 새별오름, 산굼부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제주의 모든 오름이 그렇듯이 오름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보여주는데, 억새와 어우러진 가을 풍경도 다르지 않다.

따라비오름
따라비오름
새별오름
새별오름
산굼부리
산굼부리
야고
야고

따라비오름은 일부러 이 계절에 찾아야 할 정도로 가을의 대표적인 오름이다. 정상에 서면 세 개의 굼부리로 나뉘는 능선과 어우러진 억새가 장관이다. 아끈다랑쉬의 경우는 완만한 경사면을 덮은 억새가 장관이고, 새별오름은 오름의 사면을 뒤덮은 억새가 장관이다. 산굼부리 오름은 끝없이 펼쳐진 억새평원이 그 너머의 한라산과 어우러진 모습이 일품이다.

물론 이들 오름만 억새와 어우러진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오름이 억새를 품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오름만을 소개하는 것은 완만한 능선을 함께 볼 수 있느냐의 여부다. 제주 오름이 보여주는 미의 극치는 완만한 능선이기 때문이다. 모나지 않는 능선은 흡사 어머니의 젖가슴을 연상시킨다. 그만큼 포근하다.

가을 오름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오름 사면에 널려 있는 무덤의 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한 무덤과 이를 둘러싼 산담이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몇몇 오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오름 사면에 무덤이 있다. 심지어는 거대한 공동묘지를 형성한 곳도 있다.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제주사람들만의 특징이 스며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사진가들은 오름을 촬영하며 프레임 안에 무덤이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아름다움만을 보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제주의 참모습이 배제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상은 또 있다. 억새 뿌리 주변에 기생하는 야고라는 꽃이다. 야고는 제주도의 억새 밭에 나는 일년생 기생식물로 키가 5~7㎝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야 볼 수 있다. 억새들판의 아름다움에만 한 눈 팔면 볼 수 없다는 얘기다. 무엇이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법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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