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한 청년이 7년 간 1,000여 곳의 회사에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당신 회사에 입사하지 않겠다는 것. 물론 이 회사들이 그에게 입사를 요청한 적은 없다. 그들은 채용공고를 냈을 뿐이다.
이 미친 짓의 주인공은 조형예술작가 쥘리앵 프레비외다. 그가 보낸 ‘입사거부서’(클 발행)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모집 공고와 입사거부서, 이에 대한 회사의 답변, 3통의 문서가 한 세트로 반복된다. 이 퍼포먼스의 원동력은 예상대로 ‘분노’다. ‘헬조선’의 구직자들도 익히 아는 감정이다. 어떤 회사는 채용공고만으로도 우리를 화나게 한다. 입사할 생각이 전혀 없어도 마찬가지다.
“①26세 미만 청년들에게 ②성공적인 삶을 원한다면…③6~9개월 간의 유급 인턴 과정을 이수하게 되면 희망하시는 지역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알선 받으실 수 있습니다.(인턴 임금은 최저 임금의 65%가 보장됩니다)”
유통회사 레 무스크르의 채용공고엔 어떤 문제가 있을까. 프레비외는 성공적인 삶과 ‘최저 임금의 65%’ 사이의 연관성을 따진다. “성공적인 삶과 박한 임금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되어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오류 때문에 귀사를 선택하려는 지원자가 귀사의 경쟁사로 발걸음을 옮길 것 같습니다. 이 명백한 모순을 바로잡아주셨으면 합니다.”
프랑스 우아트산업에는 채용공고에 첨부된 사진을 지적한다. 정장 입은 청년들이 패기롭게 뛰는 사진이다. “귀사의 채용공고에 사용된 이미지는 해석하기가 까다롭습니다. 두 사람은 왜 그토록 바삐 복도를 뛰고 있는 걸까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설을 가능케 합니다.” 급작스런 화재가 발생해서 대피 중, 오후 4시 간식 타임이 되어 간식을 먹으러, 달리기 기록이 가장 좋은 직원에게 회사 대표가 임금을 인상해주겠다고 해서, 대머리라는 이유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모욕해서. 프레비외가 제시한 가설 중 마지막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당신의 회사를 향해 뛰고 있다는 것이다. 그 메시지의 내용은 “난 당신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아요”.
그의 딴죽은 끝이 없다. 어떤 회사는 채용공고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어떤 회사는 집에서 멀어서, 어떤 회사는 채용공고에 “찬란하게 빛날 당신의 능력”이라는 별 어울리지도 않는 문구를 넣어서. 작가의 시비에 대부분의 기업은 “귀하의 지원서는 흥미로우나 안타깝게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다”로 일관하지만 몇몇 성실한 인사팀 직원은 발끈하여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한국에도 진출한 헹켈이 그렇다. 프레비외는 헹켈의 ‘친구 같은 회사’라는 표어에 격분한다.
“귀사께서 근무하시는 회사를 인간의 친구라 하는 것은 부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2003년 3월, 질산나트륨이 함유된 2톤의 오염 폐수가 영국 켄트주 벨버디어시 인근에 위치한 귀사의 공장에서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헹켈은 지원자의 부정적 인식에 “유감”을 표하며 헹켈의 유구한 127년 역사를 읊는다. 지속가능과 사회적 역할을 운운하는 그의 연설은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갖추겠다는 말로 끝난다.
취업난과 적은 임금, 과로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에서 프레비외의 분탕질은 대리만족 그 이상이다. 작가는 2007년 프랑스에서 책을 출간하기 전 이 문서들로 전시를 열었고 프랑스의 권위 있는 ‘마르셀 뒤샹 예술가상’과 ‘시앙스포 현대에술상 관객상’을 수상했다. 드디어 그가 ‘취업’한 것이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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