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소도시 시장의 지극한 ‘한글 사랑’이 화제다.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밀피타스의 호세 에스테베스 시장이 그 주인공. 에스테베스 시장은 지난 8일(현지시간) 시립도서관 강당에서 한국어교육재단(이사장 구은희)과 함께 573돌 한글날 기념식을 열었다고 연합뉴스가 11일 보도했다. 2013년 한글 창제(1443년)를 기념해 한글날 바로 전 토요일을 ‘코리안 알파벳 데이’로 선포한 이후 4년째 같은 행사를 이어가고 있다. 전체 주민 7만여명 중 한인은 600여명이 거주하는 밀피타스가 시 차원에서 특정 민족의 행사를 공동주최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필리핀 출신 에스테베스 시장이 한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시 커미셔너로 활동한 구 이사장의 남편 위재국 씨와 만나면서부터다. 위 씨에게서 한글 창제의 역사적 배경과 한글의 아름다움 등을 전해 들은 그는 “이런 글자의 탄생을 기리는 것은 아주 뜻깊은 일”이라며 ‘코리안 알파벳 데이’를 지정했다. 나아가 시 지원금으로 매년 기념행사를 열도록 시의회를 설득하기도 했다. 한국어교육재단은 2006년부터 자체적으로 기념행사를 열어왔다.
에스테베스 시장은 기념일 선포 이후 행사를 열면서 어디서건 한인을 만나면 늘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또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정도의 한국말도 건넬 줄 안다. 올해 행사에서 그는 “우리 시에서 한글날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문화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 행사가 앞으로도 한국과 한국문화를 밀피타스 시민에게 알리는 장(場)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행사를 함께 준비한 한국어교육재단에 감사장을 전달했다.
한국어교육재단은 올해 행사를 도서관을 찾는 어린이와 가족이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춤누리 공연단의 화려한 부채춤, 한국어로만 노래하는 외국인 중창단 ‘어드로이트 칼리지 앙상블’과 테너 이우정의 공연을 비롯해 훈민정음 서문 낭독, 한글에 관한 동영상 상영 등으로 진행됐다. 또 세계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고깔모자를 종이로 접어 쓰고 사진을 찍는 순서도 마련됐다. 에스테베스 시장도 재단 측에서 준비한 한국 관복을 입고, 고깔모자를 쓴 다음 종이로 만든 청사초롱을 들고 행사에 직접 참여했다. 이번 고깔모자 이벤트는 종이문화재단·세계종이접기연합(이사장 노영혜)의 지원으로 이뤄졌다.
한국문화 체험 행사도 열렸다. 밀피타스 주민들은 한복을 입고, 족두리와 사모를 쓴 뒤 기념 사진을 찍었고,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 마지막 장을 인쇄하고, 한글 붓글씨로 ‘직지’라는 글씨를 써 보기도 했다.
구 이사장은 10일 “에스테베스 시장의 한글 사랑은 밀피타스시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채택, 시립 도서관에 직지 영인본 소장, 성남시와 자매결연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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