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책과 같은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시절에는 책을 읽다가 주인공이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괴물과 마주하는 장면이 나오면, 주인공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괴롭힘과 멸시를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는 장면이 나오면, 망설임 없이 얼른 책을 덮었다. 현실과 달리 책은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나이에도 물론 책은 현실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진짜 세상은 책처럼 곤란한 순간에 발을 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책처럼 읽고 싶을 때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멀리 던져버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어머니는 지갑 속에 있던 동전의 행방을 따져 묻고, 선생님은 까맣게 잊고 있던 숙제를 꺼내놓으라고 다그친다. 친구들은 이미 정해져 바꿀 수도 없는 나의 생김새나 이름을 가지고 창피하고 괴상한 별명을 지어내 놀려댄다. 눈을 감았다 떠도, 뒤를 돌아보아도, 현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살고 싶지 않은 순간에는 잠깐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온전히 내 삶을 책임지고 타인까지 돌봐야 하는 어른이 되면서부터, ‘세상에 밀착되어’ ‘현실을 직시하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이런 말들을 자주 되뇌었다.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가족을 책임져야 하니까, 나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주어지니까, 되풀이되는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옳다고 하는지 살피곤 했다. 현실은 타인과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
창밖에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이따금 현실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그런 게 정말 있기나 한 것일까. 현실이란 가장 비현실적인 게 아닐까.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뉴스로 보여주는 것이 현실일까.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검색어들이 현실일까. 겹겹이 쌓여 있는 매트리스 저 밑에서 밤새도록 굴러다니던 완두콩 한 알 같은 불편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책 속에서는 아무리 무시무시한 괴물을 만나도, 어떤 끔찍한 누명을 써도 반드시 도달하는 진실이라는 지점이 있었다. 용감하고 정직하면 요란한 행복은 아닐지라도, 겸허한 각성에는 이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은 고작해야 맷집과 변명, 핑계와 거짓말로 견디고 애쓰는 게 최선일 뿐이다. 편집이 잘못된 영화, 목차가 뒤죽박죽인 이 책이 정말 나에게 주어진 현실일까.
딱 어느 시점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인제 그만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작년 어느 날 지진이 일어난 카트만두 거리의 무너진 건물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는 순간이었을 수도 있고, 몇 달 전 한낮의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허공에 대고 욕설을 퍼붓던 남자를 목격했을 때일 수도 있다. ‘성인의 철없음에 대항하여 언제나 패배하는 어린이의 성숙성’이라는 구절을 책에서 읽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핑계도 신물이 나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에 담보로 잡혀 있는 진정성 같은 건 던져버리고 싶었다.
땅 위에서 고작 5센티미터라도 떠올라 보고 싶다. 거리를 두고 싶다. 현실과 유리되고 싶다. 내가 세상이라고 믿고 있는 장소보다 한 뼘쯤 위에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싶다. 위로 올라가면 몸담고 있던 저 아래가 도대체 무엇인지 한 눈에 보일 것이다.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어떤 지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도 아니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곳도 아니고, 누군가가 생각하는 그런 곳도 아닌 곳.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 지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불가능이 가능이 되는 현실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부희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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