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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못 살리는 코어사업, 흐지부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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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못 살리는 코어사업, 흐지부지 우려

입력
2016.10.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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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 인문학 육성 내걸었지만

기존 운영 프로그램들과 중복

취업률 제고 정책 비난도 일어

3년 뒤엔 교육부 예산도 끊겨

장학금 지급도 보장 못할 판

“변형된 대학구조조정 사업” 비난

“원래 문학에 관심이 많아 인문대에 진학했기 때문에 융합프로그램에는 관심이 없어요.”

이화여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윤모(20)씨는 올해 2학기부터 시작된 ‘대학 인문역량강화(코어ㆍCORE) 사업’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순수학문과 공학을 접목해 인문학 진흥을 꾀하겠다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대학원 진학 시 장학금 지급을 빼면 사실상 취업준비를 위한 변형된 대학구조조정 사업이라는 게 윤씨의 생각이다.

사회수요에 부합하는 실용 인문학 육성을 내걸고 교육부가 추진하는 코어사업이 일제히 막을 올렸다. 하지만 취업률 제고 정책이라는 비판과 함께 세부 전공도 대학들이 이미 운영 중인 프로그램과 중복돼 같은 문제가 지적됐던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ㆍPRIME) 사업’의 재판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코어사업은 애초 선행 대학 재정지원 정책인 프라임사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프라임사업은 산업ㆍ직업별 인력수급전망에 따라 학사구조를 개편하고 정원을 조정하는 등 철저히 청년 취업난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대학들은 공학 등 실용학문 정원을 늘리는 대신 인문학과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택했고 ‘인문학 죽이기’ 논란이 일자 교육당국이 내놓은 것이 코어사업이다.

코어사업은 어학능력에 기반을 둔 글로벌지역학, 경영ㆍIT 등 실용학문과 접목한 인문기반융합 등 교육부가 제시한 5개 모델 중 대학 특성에 맞게 전공을 꾸린다. 9일 각 대학에 따르면 이화여대는 지역학 과목(21학점)을 이수하면 ‘글로벌지역학 인증서’를 발급하고 인문경영, 인문테크놀로지 등 융합전공을 신설했다. 서울대도 동아시아비교인문학과 고전문헌학, 인문데이터과학, 정치경제철학 등 4개 전공을 새로 만들었고, 한양대는 G2지역학 전공과 미래인문학심화ㆍ융합 전공을 선보였다. 올해 선정된 19개 대학에는 총 522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일단 구색은 갖췄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새로울 게 없다는 평가가 많다. 류덕경 한양대 인문대 회장은 “이미 인문대 취업난에 대비해 ‘수행인문학’ 과정을 만들어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과학기술 등 다른 전공과 융합시킨 자체 프로그램이 있다”며 “이름만 살짝 바꾼 코어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고려대생 김모(26)씨도 “필요한 학생은 알아서 공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데 사회수요에 부응한다는 명목으로 전공을 강제로 개설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학부 때부터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 코어사업의 특징. 서울대는 2018년 9월 이전 인문대 석사과정에 진학하는 학부생에게 매달 75만원(110명 내외)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고려대 역시 대학원 진학 예정자에게 매달 50만원을 지원하고 교환학생에게 지원금 지급을 시작했다. .

그러나 교육부 예산 지원이 끝나는 3년 뒤 장학금 지급을 담보할 수 없는데다 돈으로 학생을 끌어 모으는 게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명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는 “프라임사업으로 인문학 구조조정이 시행 중인 와중에 장학금으로 데려 온 학생들이 무슨 비전을 갖고 학업에 매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학부 시절 미리 장학금을 받은 후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을 제재하거나 관련 예산을 회수할 방안도 마련돼 있지 않다.

교육부와 대학들은 사업 초기 단계인 만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다른 인문학 연계전공은 지원자가 1,2명에 불과하나 코어사업 전공은 신청자가 증가했다”며 “내년부터는 개설과목도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해 일부 전공에서 혼선이 있지만 대학별로 교수 내용을 조정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코어사업은 사실상 프라임사업에 따른 인문학 말살 우려를 희석시키기 위한 끼워넣기식 정책”이라며 “여러 전공을 혼합한 학문을 단기간에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정부의 근시안적 행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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