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 정국 주도권 찾고 대권 구도 영향 가능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후보 시절 개헌 추진을 공약했다. ‘충분한 논의를 거쳐 국민의 공감을 얻은 뒤’라는 전제를 달아,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ㆍ국민의 기본권 강화 등 개헌 방향도 제시했다. 하지만 취임 후 박 대통령의 개헌 약속은 흐지부지 됐다. 박 대통령이 “개헌은 블랙홀”이라며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 자체에 반대한 탓이다. 청와대는 국정 동력을 빼앗길 것을 우려해 정치권의 개헌 목소리를 매번 틀어 막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개헌 정국이 달아 오르려 하는데도, 청와대는 꿈쩍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거듭 선을 그었다. 노동개혁ㆍ경제살리기를 비롯한 국정과제를 힘 있게 추진할 마지막 기회인 올 연말을 개헌 논란으로 흘려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말ㆍ연초엔 청와대의 기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여권에서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승부사’인 박 대통령이 임기 말 정국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해 개헌 카드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개헌’은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과 임기 말 권력 누수 등 청와대에 불리한 내년 정국 상황을 순식간에 반전시킬 수 있는 파괴력 있는 카드다.
청와대가 대권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공간도 생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개헌 논의 가능성을 열어 둔 데 이어, 정진석 원내대표가 최근 개헌론에 불을 붙이려 한 게 청와대와의 교감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개헌을 주도할 수 있는 전제로 ▦현직 대통령의 카리스마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부재(不在) ▦여야의 생산적ㆍ우호적 관계의 3가지를 제시했다. 이 관계자는 “이 가운데 세 번째 조건인 여야 관계만 빼면 개헌 추진의 조건이 무르익은 것이 사실”이라면서 “다만, 박 대통령이 정국 전환용이라는 시선을 감수하고 개헌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이에 박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정치권의 개헌 논의에 반대하지 않는 선에서 개헌 정국을 열어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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