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장께.
먼저 제40대 체육회장 당선에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체육회장은 무보수,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상징성은 ‘체육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큽니다. 대외적으로도 국가올림픽위원장(NOC)을 겸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한체육회는 97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체육의 본가입니다. 일제강점기 1920년 7월13일 창립된 조선체육회를 모체로 한 대한체육회는 4년 후 1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난 7일 개막한 전국체육대회도 조선체육회의 첫 작품인 1920년 11월4일 제1회 전조선 야구대회가 기점입니다.
1919년 2ㆍ8독립선언을 이끈 도쿄 유학생들이 주도해 만든 조선체육회 창립 취지서를 보면 “(조선인의) 안색은 어두워 아무런 광채가 나지 않고 그 몸은 아무 기력이 없으며 그 정신이 흐릿함은 무슨 까닭인가? (중략) 이런 현상은 국가 사회의 쇠퇴를 불러오는 데다 장래로 이어져 자손에 미칠 것이니 바로 멸망의 길을 스스로 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어찌 우리가 한심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라는 뼈아픈 반성 하에 체육을 통한 구국의 사명감마저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혼과 정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실제 체육회장들의 면면을 보면 독립운동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번 체육회장선거에서 이 회장의 당선이 예상 밖이었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친 정부측 후보의 난립이 표 분산으로 이어져 어부지리로 당선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선거결과를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최다 득표를 했기 때문입니다. 전체 선거인단(1,405명)중에서 20%가 조금 넘는 294표를 얻어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지만 총 투표수(892표)로 보면 33%의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2위(장호성 213표)와의 표차도 상당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회장께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으로 표심을 얻었습니다. 이는 문체부가 개혁이란 이름으로 조직 사유화, 승부조작 등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 해소에 나섰지만 체육인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체부가 밉다고 체육계의 부정부패와 타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을 둘러싸고도 이 회장은 당시 체육회 부회장으로서 체육회 주도의 통합을 주장하면서 문체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께름칙한 부분은 이 회장이 수년간 수장으로 재임했던 대한수영연맹 핵심간부들이 비리혐의로 사법처리 됐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회장께선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사퇴해 결백을 주장했지만 외부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조직 수장으로서 비리를 방관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이에 대한 해명의 말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회장께선 이제 통합 체육회장으로 4년 임기의 첫발을 뗐습니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을 물적ㆍ질적으로 통합해 스포츠 선진국으로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이 회장에게선 ‘일꾼’보다 ‘싸움꾼’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공약으로 내건 체육회 자율성 회복과 재정자립을 성취하려면 싸움꾼으론 안됩니다. 이 회장은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이기도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대로 자기를 버리고 체육회를 살리는 방향으로 발상을 대전환 해야 합니다. 연간 4,000억 원이 넘는 체육회 예산 98%가 국민 세금에서 나오고 있는 이상, 정부와 긴밀한 협조ㆍ소통이 필요 합니다. 일각에서 정부는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들립니다. 그러나 대규모 혈세가 투입되는 곳에 감시의 눈길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적이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기흥호(號)의 체육회에서는 혈세를 제 돈 인양 쓰고, 친인척을 고용해 조직을 사유화하는 ‘막가파 체육인’이 더 이상 발을 붙일 수 없도록 기대합니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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