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일까. 선선하고 맑은 가을 날씨가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불현듯 긴장하는 버릇이 있다. 날씨 탓이 아니다. 수능시험 때가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시험을 잘 보길 기대하거나 시험 때문에 얼마나 고통이 컸을까를 안타깝게 여겨서만이 아니다. 바로 그 시험점수 때문에 혹시라도 누군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상상하기도 싫은 끔직한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시험점수가 무엇이기에 대학 간판이 무엇이기에 우리 청소년들이 목숨까지 내걸다시피 해야 하는 걸까. 점수만 가지고 논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와 연관된 가족관계, 교우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되겠지만 청소년들의 자살 문제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그냥 방관할 수가 없다.
청소년이 무얼 안다고 자살까지 하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렇게 물어서 답이 나올 성질의 것은 아니다. 사실 답은 명백하다. 청소년이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사랑하는 생명을 버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공부는 왜 하며 시험은 왜 보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저 밑바닥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조사에서도 성취도는 매우 높은데 만족도는 밑바닥이다.
그토록 잘 살아 보려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는데 왜 이렇게 행복하지 못할까. 다름 아니다. 행복은 공부나 시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은 성숙한 자기사랑에서 온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자신의 적성을 찾아 진정 잘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할 때 행복감이 온다. 거기에서 이타적 사랑으로 확대될 때 행복감은 더욱 확산된다. 또 행복은 습관이고 의지이다. 행복은 굴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쌓는 것이다. 실습하고 습관화해야 한다.
청소년이 성숙하게 자기를 사랑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부하기 싫다고 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된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에게 억지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 대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 바로 그걸 마음껏 하게 해야 한다. 사사건건 남과 비교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상처를 위로하고 어루만져줘야 한다. 아이 삶의 주인은 그 자신이다.
청소년 세계에서 모든 경쟁구도와 경쟁의식을 완전히 없애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 줄 세우기가 아니라 여러 줄 세우기도 같은 취지다. 각자의 역량을 존중하고 독특한 색깔과 독창성을 높게 칭찬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대대적으로 무한경쟁 풍토 개편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동시에 이에 반하는 모든 행태는 아동ㆍ청소년 학대로 처벌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교육계나 사교육계는 물론 가정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될 일이다.
지금 청소년들이 저토록 고통받는 것은 모두 우리 어른들 책임이다. 청소년들을 저렇게 만든 것은 어른들 잘못이다. 어른들이 먼저 행복하지 못했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의 행복지수가 밑바닥이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2년째 1등을 하고 있다. 이만치 먹고 살 만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는데도 우리는 행복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행복은 무한경쟁과 투쟁, 성장과 승리, 소유와 지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돈 권력 지위 명예 인기 쾌락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욕망과 탐욕을 내려 놓고 비워야 한다. 그 빈 자리에 무엇이 채워질까. 사랑과 자비다. 성숙한 자기사랑, 이타적 나눔과 섬김, 더 넓은 홍익적 사랑이다.
청소년 자살에 대해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 행복을 실습하게 해야 한다. 힘들 때 하소연할 창구를 설치해야 한다. 모두가 그들에게 ‘괜찮니?’하고 따뜻한 동행의 한 마디를 던져야 한다.
강지원 변호사ㆍ전 청소년보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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