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음담패설’파문이 한 달 남은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마지못해 트럼프를 지지했던 공화당 거물 인사들이 잇따라 지지를 철회하는가 하면 트럼프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트럼프는 ‘내 인생에 사퇴란 없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7일 트럼프가 지금 부인인 멜라니아와 결혼한 몇 개월 후인 2005년 10월 미국의 한 드라마에 카메오 출연을 위해 녹화장으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저속한 표현으로 유부녀를 유혹하려 한 경험 등을 얘기한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과거에도 트럼프가 여성비하 발언을 한 적이 있지만, 이 녹음파일은 ▦저속한 용어 ▦유부녀를 유혹한 뻔뻔한 경험 ▦여성의 신체 부위에 관한 상스러운 표현 등이 건전한 상식의 도를 훨씬 넘어선다.
트럼프가 7일 저녁 황급히 사과하고 나섰지만, 공화당 주요 인사들이 트럼프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은 ‘구역질이 난다’며 8일 예정된 위스콘신 합동유세를 취소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혐오스럽고 용납이 안된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비판했다.
많은 기행과 막말에도 불구, 트럼프를 줄곧 변호하던 부통령 러닝메이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마저 “도저히 그를 용납할 수 없다. 트럼프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말했다. AP통신은 펜스 지사의 부인 카렌 여사가 격노했다고 전했다.
비난과 공격을 넘어 트럼프 때문에 의원 선거에서 위기에 몰린 공화당 의원들은 지지 철회를 선언하고 있다. 유타 주의 제이슨 샤페츠 하원의원과 게리 허버트 주지사에 이어 마사 로비(앨라배마) 여성 하원의원이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마이크 리(유타), 마크 커크(일리노이), 벤 새스(네브래스카) 상원의원과 마이크 코프먼(콜로라도) 하원의원은 트럼프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음담패설 음성파일 공개 후 트럼프의 다른 과거 성추문 의혹도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어 트럼프의 여성비하 논란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CNN 방송의 여성 앵커 에린 버넷은 이날 트럼프 지지자와 인터뷰를 하던 도중 자신의 한 친구가 과거 트럼프로부터 거의 강제 키스를 당할 뻔했다는 얘기를 털어놨다.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칼럼에서 트럼프의 사업 파트너에서 그의 여자친구로까지 발전했던 질 하스가 트럼프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소개했다. 미인대회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하스는 1992년 한 행사장에서 트럼프 바로 옆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그의 손이 스커트 안으로 들어와 화장실로 도망쳤고, 1993년 사업계약차 플로리다에 내려갔을 때는 트럼프가 장녀 이방카의 빈방에서 자신을 벽에 밀어붙인 뒤 강제로 키스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의 대선은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자극적인 머리기사를 통해 이번 녹음파일을 둘러싼 논란과 더불어 이 사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판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CNN 방송도 “트럼프 캠프의 한 소식통이 ‘이번 녹음파일 공개는 자칫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현재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을 맹비난하면서 총공격을 하고 있다. 클린턴은 트위터에서 “이것은 아주 끔찍하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대선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후보 사퇴 가능성도 ‘제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 신문들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생에서 물러서 본 적이 없으며 지금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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