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황지영] 지금의 배우 이병헌이 있기까지는 25년여의 연기 내공과 경험이 쌓인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 이면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욕심도 있겠지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제 아들 준후 군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소망이 있다.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하는데.
"정말 기분 좋은 말이다. 배우에게 커다란 선물 같은 말이다. 그러한 말이 나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다. 믿고 보는 배우로 얼마나 앞으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오랫동안 듣고 싶은 만큼 오랫동안 그런 배우가 됐으면 하는 어려운 바람이 있다."
-본인 작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나.
"확실히 객관적으로 보긴 어렵다. 몇 번을 봐도 온전하게 영화의 스토리가 들어오진 않는다. 내 위주로 보는 건 어쩔 수 없다. 영화에 빠져 보기 보다는 내 연기 재평가의 시간이 아닐까."
-가장 많이 본 출연작은.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을 극장에서 내릴 때까지 틈날 때마다 봤다. 30번 이상 본 것 같다. 일반 관객들이랑 섞여서 여러 번 보니까 그제서야 영화처럼 보이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 아쉬움은 남는다. 그 당시엔 매 컷을 최선을 다해 연기했겠지만 지금 보면 미흡하고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반복되고 있다."
-소중한 작품을 꼽아본다면.
"모든 작품이 각자 여러 이유로 소중하다. 그렇게 딱 하나 꼽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꼽아본다면 영화 '달콤한 인생'(김지운 감독)이다. 그 영화로 인해 할리우드 경험을 하게 됐다. 해외 영화인들에게 나를 알리는 기회였기 때문에 그 작품에 대한 고마움은 늘 가슴 속에 있다."
-그게 김지운 감독과의 인연이 남다른 지점인가.
"조금 전에도 문자를 주고받았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김 감독은 나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잘 아는 사람이다. 네 작품을 함께 하면서 그 양반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나를 예민하게 지켜봤다. 그래서 오는 장단점이 있다. 나를 잘 아니까 나의 어떤 부분을 잘 뽑아내야 하는지 알고, 반면 잘 안다고 생각해서 나의 또 다른 부분을 못 보고 놓칠 수도 있다. 김 감독과 복수를 테마로 여러 번 호흡을 맞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복수나 무거운 소재 말고 말랑한 작품에 출연하는 건 어떨까.
"사회적 분위기나 그때의 시류에 따라 제작되는 영화들이 있다. 지금은 비리 영화, 폭력 영화 등이 인기다. 그런 범죄 영화가 많은 것은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영화에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더 많은 관객들이 찾는 게 아닐까. 나도 휴먼코미디, 드라마 등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개봉할 '싱글라이더'가 그런 가슴아픈 정서를 담고 있는 면에서 이전에 보여드린 영화와는 다를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건 어떤가.
"처음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고 작품 하나 고르기에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작품을 놓친 것도 있다. 첫 작품으로 '지아이조'를 고르고 나서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좋게 읽은 시나리오고, 하고 싶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대담하게 하려 한다. 일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하지 않나."
-가장 긴장되던 순간을 기억하나.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올랐을 때, '지아이조' 첫 대본 리딩 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 지금은 '내가 영어 못하는 게 죄야?' 하는 심정으로 무대포로 일단 해보려 한다. 그게 결과적으론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할리우드 진출의 의미가 있다면.
"대외적으로는 배우로 살면서 내 작품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도전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어서다. 돌아가신지 17년이 됐는데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영화광이셨다. 상상 이상으로 영화를 좋아하셔서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등을 볼 때면 감독, 배우, 스토리 등 영화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이해도 못했지만 듣기만 했다. 그런 분이 지금 내가 경험한 것들을 알고 계신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실까. 혼자만 짜릿한 기분이지만 개인적으론 큰 의미가 있다. 할리우드에서 핸드프린팅 행사를 했는데 그 때 소감으로 '이 상황을 하늘에서 우리 아버지가 보고 계신다면 기절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로 아버지께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가 크다."
-할리우드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가.
"우리는 작은 것에 움츠려들고 스스로를 제한하고 행동반경을 좁게 만든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엉뚱하게 상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할리우드에서 만난 아티스트들은 그랬다. 마음속에 10살짜리 아이가 살고 있다. 그 꼬마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 찾아내고 기억하려 한다. 힘들지만 나도 그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중 아들 준후 군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아이가 너무 귀엽다. 너무 어리니까 영화를 제한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악마를 보았다'(청소년관람불가)면 어떨까(일동 폭소). 지금 준후는 TV를 봐도 5분도 집중 못해서 영화를 보여준다는 건 꿈도 못 꾼다. 이야기를 파악할 때가 오면 틈만 나면 영화관 나들이를 하고 싶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 그랬듯이."
사진=OSEN
부산=황지영 기자 hyj@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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