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 다른 뜻... 분단의 시간 만큼 더 높아진 ‘남북 언어장벽’

북에서 ‘아재’는 ‘아가씨’ 호칭
‘살이 쪘다’도 좋은 의미로 쓰여
단어 50%는 서로 이해 못해
다른 사회체제ㆍ생활방식 거치며
새로운 단어가 끊임없이 생성돼
“한국 드라마 보면서 익혔지만…”
탈북자들 대화에 큰 어려움 느껴

함경북도 무산에서 나고 자란 허철민(26ㆍ가명)씨는 2011년 친구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탈북했다. 중국과 베트남 태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 지 어느덧 5년, 남한 땅과 지리는 그나마 익숙하지만 남한 말과 글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는 7일 “중국에서 몰래 구한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남한 말을 미리 익혔다고 자부했지만 실생활에서 서로 다른 단어의 뜻과 문화 차이로 당황했던 적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외래어가 불편하다. ‘룸메이트’나 ‘치킨’ 등 흔히 쓰는 외래어를 몰라 단체 대화에서 소외되기 일쑤였다. “스토리를 들려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이야기를 해달라는 거냐”고 되물을 정도로 허씨에겐 아직 영어식 외래어가 낯설다. “북한에서도 벤또깡(도시락통), 코푸(컵) 같은 일본어는 사용하지만 영어는 거의 없어서 외래어를 쓰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남북에서 쓰이는 뜻이 달라 오해를 받기도 했다. 예컨대 오랜만에 본 여성에게 반가운 마음에 “아재, 살이 쪘다 마치 솜옷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가 사이가 멀어질 뻔 했다. 북한에서 ‘살이 쪘다’는 표현은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남한에서 아저씨를 뜻하는 ‘아재’는 북한에선 아가씨의 호칭이라는 것이다.

9일로 570번째 한글날을 맞지만 분단 71년이 지나면서 남북의 언어는 그만큼 더 멀어지고 있다. 19개의 자음, 21개의 모음을 사용하고 있는 점은 남과 북이 다를 바 없지만, 오랜 세월 다른 사회 체제와 생활방식을 거치면서 남북한어는 서로에게 낯선 말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활상을 반영한 새로운 단어가 양쪽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외래어 유입과 한글파괴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언어장벽은 물리적 장벽보다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남북 단어를 번역해는 애플리케이션도 나왔다.

2013년 12월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한국으로 건너 온 탈북 2세 양주희(18ㆍ가명)양에게 남한의 또래 언어는 외계어에 가깝다. ‘한민족이니 말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는 어렵기만 하다. ‘고구마(답답한 상황)’, ‘사이다(답답한 상황이 시원하게 해결됐다)’라는 단어는 그나마 문맥으로라도 파악할 수 있지만, ‘혜자스럽다(가격대비 성능이 좋고 알차다)’, ‘쩐다(놀라움을 표현하는 감탄사)’ 등은 의미를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요즘에는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ㅇㄱㄹㅇ(내용이 사실임을 강조)’ 등 줄임말도 많이 써서 더욱 답답하다. ‘문찐(문화찐따ㆍ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친구들이 놀렸지만 의미를 뒤늦게 알아 속상함을 홀로 삭혔을 정도다. 양양은 “여전히 대화의 20%정도는 못 알아듣는다”며 “줄임말과 영어를 많이 써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탈북ㆍ다문화청소년 대안학교에 다니며 항공 승무원의 꿈을 키우고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총 50만6,276개(‘북한어’ 제외 시 43만9,816개)의 표제어 중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엔 없는 단어가 22만8,474개에 달했다. 표제어만으로 볼 때 북한 사람은 남한 사람의 단어 절반 가량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조선말대사전에 있는 표제어 35만2,943개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말은 13만8,472개다. 남한 사람 역시 북한 사람이 하는 말의 39%가량을 이해할 수 없는 셈이다. 여기에 신조어나 줄임 말 등 공식 등록되지 않은 낱말까지 더할 경우 그 수는 헤아릴 수 조차 없다.

전문가들은 언어 분단과 이질화는 단기적으로 바꿀 수 없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의 차이를 먼저 좁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완서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연구원은 “전문용어는 남북이 66% 이상 차이나 학자들이 모여 이야기 했을 때 대화가 쉽지 않을 정도”라며 “70년 넘게 달라진 언어를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인위적으로 언어를 합치기 보다는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언어통일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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