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그동안 日기업 집중공격
세븐앤아이홀딩스 CEO 퇴진도
경영 불투명ㆍ주가 저평가社 타깃
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전자의 기업 분할을 요구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전 세계‘행동주의 헤지펀드’(액티비스트)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분 투자로 의결권을 확보한 뒤 사업 재편이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는 액티비스트들은 그 동안 아시아에서는 주로 일본 기업들을 공격해 수익을 챙겼다. 그러나 지배 구조가 취약하고 경영 불투명성이 높은 우리 기업들이 다음 공략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7일 영국 투자정보 업체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투자 기업에 경영 개선 등을 요구한 액티비스트의 수는 지난해 309개나 됐다. 이는 전년 대비 1.3배 증가한 것이다. 이 중 아시아 기업을 공략한 액티비스트의 수는 2014년 14개에서 지난해는 상반기만 10개에 달했다. 액티비스트 인사이트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4월 일본에선 액티비스트의 공격으로 스즈키 도시후미 일본 세븐앤아이홀딩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퇴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본에 편의점 개념을 처음 도입해 ‘편의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즈키 회장은 당시 세븐일레븐 사장직을 아들에게 맡기려 했다. 그러나 미국 행동주의 투자펀드 서드포인트가 “스즈키 회장이 아들에게 세븐일레븐 경영권을 준 뒤 모회사인 세븐앤아이홀딩스 회장직까지 물려줄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서드포인트의 주장은 결국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졌고 스즈키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액티비스트들이 그 동안 주로 일본 기업을 집중 공격한 이유는 성장성과 자산 가치가 높은데도 경영 불투명성 탓에 주가가 저평가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몇 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뒤 지배 구조가 취약한 가족 기업을 겨냥한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낮은 지분율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단기적 투자성향으로 다른 주주의 장기적 이익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도 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이 많고 지배구조가 개선될 여지가 커 액티비스트가 활동하기에는 매우 우호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액티비스트가 반드시 기업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기업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기업가치 제고에 기여하는 경우도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닌텐도의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 ‘포켓몬 고’는 홍콩의 오아시스매니지먼트가 닌텐도에 모바일 게임 출시를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게 주효했다. 결국 닌텐도는 지난 7월 포켓몬 고를 내놓았고, 출시 열흘 만에 닌텐도 시가 총액은 4조5,008억엔(약 48조원)으로 2.2배나 뛰었다.
삼성도 이러한 액티비스트의 행보를 주시하며 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정형진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대표는 지난달 28일 삼성 수요 사장단 회의에 강연자로 나서 “액티비스트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평소 주주 가치를 높이고 경영권 방어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을 되짚어 보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으며, 이번 사태를 예견해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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