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아자디는 어떻게 한국축구의‘무덤’이 됐나

알림

아자디는 어떻게 한국축구의‘무덤’이 됐나

입력
2016.10.08 04:40
0 0
아자디 스타디움 전경. 구글어스 캡처
아자디 스타디움 전경. 구글어스 캡처

1974년 국내 최초로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국민 간식 ‘초코파이’가 처음 출시된 해이기도 하다. 강산이 네 번은 변하고도 남았을 지난 42년 동안 한국 축구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하지만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가 있으니 바로 ‘아자디의 저주’다.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은 ‘원정팀의 지옥’으로 불린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1974년 9월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에 0-2로 패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6번 싸워 2무 4패로 한 번도 못 이겼다. 가장 최근 대결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62ㆍ독일) 부임 직후인 2014년 11월 평가전이었다. 한국이 0-1로 무릎을 꿇었다. 슈틸리케호가 설욕을 위해 7일 출국했다. 한국은 11일 오후 11시45분(한국시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이란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차전을 치른다. 이번 최종예선 최대 고비로 꼽히는 경기다.

아자디 스타디움은 해발 1,273m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남미 예선 때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애를 먹이는 볼리비아의 라파스(해발 3,600m)나 에콰도르의 키토(해발 2,800m)와 같은 악명 높은 고지대는 아니다. A매치 경험이 풍부한 대표선수들도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영향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체육과학연구원에 따르면 해발 1,000m당 선수들의 운동 능력이 10% 떨어진다고 한다. 아자디에서 뛰면 평지보다 약 13% 떨어지는 셈이다. 특히 후반중반 이후 체력이 급격히 소진될 때부터 피도로가 심해질 수 있다. 저항을 덜 받는 축구공도 평소보다 빠르다. 골키퍼는 더 강한 상대 슛을 막아야 하고 공격수들은 정교한 패스에 애를 먹는다. 수비수들은 낙하지점을 포착하기 쉽지 않다. 2009년 2월 이곳에서 이란과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를 때 사령탑이었던 허정무(61)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는 “볼의 속도나 선수들의 호흡 등 여러 면에서 경기력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고지대는 약 이틀 정도면 적응이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이 6일 카타르와 최종예선 3차전(3-2승)을 마친 뒤 다음 날 곧바로 이란으로 떠난 것도 빠른 적응을 위해서다.

아자디 스타디움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드는 건 10만 관중의 함성이다. 이란 여성들은 경기장 출입이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거친 이란 남성 관중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면 원정 선수들은 주눅 들기 마련이다. 이 때 뿜어져 나오는 소음이 록밴드의 라이브 공연(110dB)과 비슷한 수준이다.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끼리 원활하게 의사소통하기도 힘들다.

한국과 이란 선수들이 2014년 11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경기 도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시 0-1로 진 한국은 11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에서 설욕을 노린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과 이란 선수들이 2014년 11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경기 도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시 0-1로 진 한국은 11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에서 설욕을 노린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란의 텃세도 늘 스트레스를 준다.

이란은 한국의 원정경기 때마다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경계선에서 교묘하게 텃세를 부린다. 2012년 10월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르기 위해 이란을 찾은 최강희(57) 전 대표팀 감독은 곳곳이 패인 잔디와 조명 시설조차 없는 훈련장을 보고 “이란이 한국에 오면 한강 고수부지를 내줘야 한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이천수(왼쪽)가 2004년 3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테네 올림픽 최종예선서 이란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 테헤란=연합뉴스
이천수(왼쪽)가 2004년 3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테네 올림픽 최종예선서 이란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 테헤란=연합뉴스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올림픽대표팀은 아자디에서 딱 한 번 웃은 적이 있다. 2004년 3월 아테네 올림픽 최종예선이었다.

당시 이란 올림픽대표팀도 1963년 이후 41년 동안 여기서 한 번도 지지 않은 안방불패 팀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해발 1,800m 고지대인 중국 쿤밍에서 전훈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 끝에 이천수(35ㆍJTBC 해설위원)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경기 이틀 전 갑자기 폭설이 쏟아졌는데 이란축구협회는 ‘운동장 눈 좀 치워달라’는 한국팀의 부탁을 들은 척도 안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훈련 시간이 되자 눈을 말끔히 치우고 운동하는 얄미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올림픽팀을 지휘했던 김호곤(65)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이란 원정은 늘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고 그러려니 해야 한다. 짜증내고 심리적으로 흔들리면 우리만 손해다”고 조언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