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련과 코믹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여배우가 김하늘(38) 외에 또 있을까 싶다.
그의 외모와 목소리는 지난 20년 동안 달라지지 않았고 작품 속에서 자신의 강점인 로맨스를 고집해온 것도 한결같다. 하지만 특유의 가련한 표정으로 절절한 가슴앓이를 하다가도 어느새 뻔뻔하고 새침한 얼굴로 돌변해 폭소를 안겨주는 연기 변주를 일삼으며 늘 대중의 지지를 받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4년 전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사회인 야구단 심판과 윤리 교사를 오가는 당찬 서이수로 장동건과 유쾌한 로맨스를 선보였다면 최근 드라마 복귀작 KBS2 ‘공항 가는 길’에선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가슴이 뛰는 주부 최수아로 잔잔한 멜로를 선보이며 호응을 얻고 있다. 대중을 실망시킨 적 없는 ‘김하늘의 잊지 못할 순간 5’를 꼽아봤다.
동감(2000)

1979년을 살아가는 여대생 소은이 2000년대를 사는 남자 인(유지태)과 낡은 무선기로 통신하며 애틋한 사랑을 펼치는 작품이다. 김하늘이 청순가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영화이기도 하다.
시공간을 초월해 각자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며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이색적인 소재의 영화에 신비롭고 청초한 이미지의 김하늘은 대체 불가였다는 평가가 지금도 잇따른다. 백지장 같은 새하얀 피부의 김하늘이 긴 생머리를 늘어트린 채 돌담을 쓰다듬으며 걸어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명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김하늘 스스로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대중에게나 나 스스로에게나 ‘동감’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한 작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아노(SBSㆍ2001)

극중 부모의 재혼으로 사랑하는 남자 재수(고수)와 이복남매가 되어 버린 수아를 연기했다. 어머니(조민수)의 죽음이 의붓아버지(조재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수아는 그에 대한 분노와 함께 재수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눈물 마를 날이 없다. 의붓아버지를 향해 악을 쓰다가도 재수를 향한 애절한 마음에 눈물을 쏟아내던 김하늘의 연기에 당시 시청자들도 함께 울었다. 김하늘은 한 인터뷰에서 “배우로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작품”이라며 이 드라마를 평가하기도 했다.
로망스(MBCㆍ2002)

고등학교 교사와 제자 간의 사랑을 그렸다는 줄거리 외에도 극중 국어 교사 채원을 연기한 김하늘의 대사, 헤어스타일 등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채원은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쾌활한 성격에 주관이 강하지만 한 번도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늘 운명적인 사랑을 꿈꿀 뿐이다. 우연한 계기로 제자 관우(김재원)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란 명대사를 남긴다. 김하늘이 ‘로망스’에서 선보인 어깨에 살짝 못 미치는 길이의 웨이브 헤어스타일은 ‘김하늘 머리’로 유행을 주도하기도 한다. 김하늘이 ‘로코퀸’이란 명성을 얻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7급 공무원(2009)

김하늘은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4) 등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유독 강세를 보여왔다. 2009년 배우 강지환과 호흡을 맞춘 이 영화에서도 남자친구에게도 정체를 밝히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국가정보원의 베테랑 비밀요원 수지 역으로 코믹 연기를 선보였다. 극중 김하늘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여행사 직원, 청소부 등으로 위장하며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닌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액션연기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당시 김하늘은 “첫 액션 연기에 도전하고 싶어 ‘7급 공무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신사의 품격(SBSㆍ2012)

사회인 야구단 심판이자 고등학교 윤리교사 서이수로 변신한 김하늘은 친구 세라(윤세아)의 연인 태산(김수로)을 짝사랑하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도진(장동건)과 달달한 로맨스를 펼친다. 김하늘은 이 드라마로 로코퀸의 절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로망스’ ‘동갑내기 과외하기’ 등 유독 교사 역할을 자주 해 온 김하늘은 이 작품에서도 남자 고등학생들을 휘어잡는 시원시원한 카리스마와 따뜻한 심성을 지닌 교사로 출연했다. 극중 도진과 티격태격하면서도 가슴 뛰는 30~40대 남녀의 로맨스를 펼치며 3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에 기여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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