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배우 와타나베 켄(57)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소감을 또렷한 한국말로 전해 눈길을 끌었다.
와타나베는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영화 ‘분노’ 기자회견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부산영화제가 열린 것이 영화인으로서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돼 감사하다”고 또박또박 유창한 한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해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그는 2년 전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으로 인해 부산영화제와 부산시의 갈등 등 올해 부산영화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었다. 취재진으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은 그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영화제가) 개막했다”면서도 “개막 직전에 태풍도 있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서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정보들을 들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부산영화제에 대한 진심 어린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부산영화제를 방문하기 전 스페인에서 개최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는 와타나베는 “60년의 역사를 가진 스페인의 전통 있는 영화제”라고 말한 뒤 “산세바스티안영화제를 다녀와서 새삼 느끼는 게 무언가 하나의 일을 지속시키는 힘과 그런 작업을 이어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가 1년 간 정지, 중단하면 어떨까 하는 그런 결단도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지속할 수 있다는 힘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영화인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많은 것을 삼켜 가면서 지속하는 건 굉장한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지요. 부산영화제도 이런 식으로 이행했을 겁니다. 다시 이 곳에 와서 기쁘고 언제든지 초청해주시면 달려 오겠습니다.”
이날 동석한 재일동포 3세인 이상일(43) 감독도 “일본에 있으면서도 부산영화제에 어떤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계속 들었다”며 “그렇게 힘들 게 열리는 영화제인 만큼 제가 ‘분노’라는 제목의 영화로 참여한 게 의미가 깊다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영화 제목인 ‘분노’를 현재 부산영화제를 둘러싸고 있는 갈등과 연관해 해석한 것이다. 그는 “큰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가지고 누르려고 하는 게 죽기보다 싫기 때문에 부산영화제에 깊은 동정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부산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이 감독은 2013년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어 올해도 부산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다. 와타나베는 2년 전 배우 문소리와 부산영화제 개막식 사회자로 나서며 인연을 맺었다. 올해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분노’가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선정돼 영화제를 찾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분노’는 도쿄에서 벌어진 잔혹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치바의 어촌마을에 사는 타시로, 광고회사 직원인 남성과 사귀는 나오토, 오키나와의 외딴 섬에 홀로 지내는 다나카 등 세 사람을 보여 주며 범인을 쫓는 영화다. 영화는 세 남자를 통해 인간관계의 의심과 믿음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와타나베는 딸이 사랑하는 남자 타시로를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아버지 마키 역을 맡았다.
이 감독은 “이번 작품은 현재 일본 사회가 있고 있는 문제와 상황 등을 배경으로 그렸다”며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에 물음을 던지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에 함께 한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이 영화를 보면서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며 “(부산영화제의) 위급한 처지에서 이 영화를 봤다. 영화제와 부산시 그리고 시민, 관객, 해외영화인들이 서로간의 믿음과 신뢰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 영화제에 대해 어디까지 믿음을 주어야 하는 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고 감상 소감을 밝혔다.
부산=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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