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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경제학의 배신’(2011)

입력
2016.10.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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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큐의 경제학’ 불태워 버려라!”

지금 생각하면 참 무식하게 용감했다. 어쩌다가 이런 카피까지 내걸었는지. 그것도 전면광고로, 유력 일간지에. 2011년 6월에 낸 ‘경제학의 배신’(The Value of Nothing)은 출판사 경험이 없던 나에게 ‘회심의 역작’이었으나 신문 광고를 한 건 아주 우발적이었다.

신간 초도 배본을 마친 마케터 동윤씨와 점심 후 차를 마시며 판촉 방안을 궁리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다음 날 전면광고가 하나 펑크 났으니 필름 있으면 보내달라는 출판광고대행업자였다. 광고비는 ‘오단통’보다 더 싼 초저가. 기회였다. 마감까지 두 시간 여 남았다. 직원이라곤 달랑 한 명 있는 신생 출판사가 광고를 미리 만들어 놓았을 리 없었다.

책의 표지 디자인을 맡아준 서울출판예비학교(SBi) 김태형 선생이 실력을 발휘해 가까스로 마감 시간에 맞춰 광고 디자인을 넘겼다. ‘센 곳에서 센 놈과 붙자’는 심산으로 ‘도발’한 이 광고는 적어도 사람들의 눈길을 잡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후유증이라면 출판사에게는 갑이자 ‘맨큐의 경제학’의 국내 판권을 보유한 교보문고 관계자에게 약간의 핀잔을 들은 정도.

어찌됐건 광고는 성공적이었다. 토요일 광고가 나간 후 월요일에 ‘경제학의 배신’은 단박에 인터넷서점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 상위권에 올랐다. 이어 여러 언론에서 책을 비중 있게 소개했고, 주요 인터넷서점의 첫 화면을 장식했다. 평론가와 독자들로부터도 무척 좋은 평을 받았다. 당시 잘 나가던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우석훈씨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놓고 대담을 벌였는가 하면 한 대학생은 “내 삶의 전환점이 된 책”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경제학의 배신’은 신자유주의와 맹목적인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의 결함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왜 실질적인 변화 없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 시장이 정하는 가격으로 세계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책은 지금 세상의 모순을 ‘안톤의 실명(안톤 바빈스키 증후군)’에 비유해 설명한다. 이 병은 뇌졸중이나 외상에 의한 두뇌 손상을 겪은 사람들에게서 간혹 나타난다. 증상은 시력을 잃었으면서도 자신이 볼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환자들은 굶주린 소녀가 집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거나, 있지도 않은 새로운 마을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은 몸에 상처가 생기거나 멍들면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방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시장주의라는 눈을 통해선 더 이상 세계의 사물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환각을 보게 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책은 설득력이 뛰어나다. 사람들의 눈을 흐리는 색안경을 벗겨줄 만하다. 수많은 ‘안톤의 실명’ 증세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의 적절하다. 북돋움이 지난해 절판했던 책을 얼마 전 재계약해 다시 펴낸 이유다.

김기호 북돋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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