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AI플랫폼 ‘비브 랩스’ 인수
스마트폰 중심 모든 가전제품에
음성으로 실행되는 생태계 추진
AI 선두 애플ㆍ구글 등 따라잡기
이재용표 실용주의 우선 행보
문어발식 사업 확장 방식 탈피
삼성전자가 미국의 인공지능(AI) 전문 업체를 인수하며 인공지능 생태계 조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애플, 구글, IBM 등 다른 정보기술(IT) 기업에 비해 뒤처진 삼성전자의 AI 사업에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6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AI 플랫폼 개발 업체인 ‘비브 랩스’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비브는 애플의 음성인식 기반 AI 비서 서비스 ‘시리’를 만든 핵심 개발자들이 애플을 떠나 2012년 설립한 업체로, 현재 2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인수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수천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비브의 AI 플랫폼은 외부 업체들이 자유롭게 자사 서비스를 플랫폼에 연결할 수 있는 개방형이고, 다중 명령을 내려도 알아 듣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에 비 올 것 같은데 저녁 약속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도록 택시를 예약해 줘”라고 주문하면 날씨 확인, 일정 확인, 택시 예약까지 한 방에 해결해주는 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계학습(머신러닝) 기능이 적용돼 이용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할수록 더 정교해지고 고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비브 플랫폼을 스마트폰에 우선 적용할 계획이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냉장고, TV, 세탁기 등 다양한 기기 및 서비스를 연결해 모든 것을 음성으로 실행하는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구글도 지난 4일 이런 차원에서 첫 자체 제작 스마트폰인 ‘픽셀’을 내놓은 바 있다. 이인종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은 “삼성전자는 3,4년간 음성 인식, 자연어 이해 등 AI 분야에서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왔다”며 “그 동안 축적한 AI 기술과 비브의 역량이 접목되면 상당히 경쟁력 있는 음성 비서가 완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외부 업체 M&A는 올해만 세 번째다. 지난 6월 미 클라우드 전문 업체 ‘조이언트’를 사들였고 8월에는 미국 시장에서 탄탄한 유통망을 두고 있는 고급 가전 브랜드 ‘데이코’를 인수했다. 7월에는 세계 1위 전기자동차 제조사인 중국 비야디(BYD)에 30억위안(약 4,98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확보가 필요한 사업이나 서비스를 콕 집어 발 빠르게 사들이는 이른바 ‘핀셋 M&A’는 2014년부터 본격화했다. 삼성전자는 2014년 3개, 지난해 2개 업체를 인수했다. 이 가운데 지난해 2월 인수한 미국 ‘루프페이’의 모바일 결제 솔루션은 ‘삼성페이’의 핵심 기술이 됐다.
IT업계에서는 이러한 행보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용주의’와 맥이 닿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잘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부족한 부분은 외부에서 수혈하는 시스템이 뿌리를 내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시장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내부 역량만으로 살아남기 어렵다”며 “AI 선점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