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2년 만에 수급조절제 폐지…택배시장 개방
화물연대 “노동자 생존 악화” 총파업 결의
신규 사업자 진입 까다로워 큰 여파 없다는 분석도
최저배송수수료 등 택배기사 노동여건 개선해야
정부가 12년 만에 손을 댄 소형 화물차량 수급 조절제에 대한 파장이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기존 택배회사는 물론 대형 유통사까지 소형 화물차로 자유로운 영업을 허용한 게 골자라, 화물연대 측은 즉각 “노동자의 생존 기반을 앗아갔다”며 10일부터 무기한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그러나 업계 내에서도 수급 조절제 폐지 효과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됐다는 의견이 있는 데다, 정부도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입장이라 이번 파업의 동력이 얼마나 강하게 유지될지는 불투명하다.
6일 화물업계에 따르면 1.5톤 미만 소형 화물차를 대상으로 한 ‘수급 조절제’는 연간 택배차량의 신규 허가 및 증차 여부를 정부가 결정하는 제도로, 2003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불거졌던 화물차량 포화에 따른 운송단가 인하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2004년 도입됐다. 사실상 택배차량의 시장진입을 막아놓는 시건 장치였던 셈이다. 이전엔 화물 운송은 자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했다.
그러나 온라인 쇼핑 활성화 등으로 2004~2015년 택배 물동량이 연평균 14.6% 가량 성장하면서 수급조절제의 부작용이 불거졌다. 2010년 12억 상자에 그쳤던 물동량이 2015년 18억2,000만 상자를 돌파한 반면 화물차량 증차는 2만6,600대에 그친 것이다. 화물차량이 시장 수요에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화물차 번호판(노란색 바탕에 ‘배’ 기호)을 달지 않은 택배차량(전체 차량 4만2,000대 중 20% 추정)까지 생겨났고, 화물차 영업용 번호판이 1대당 2,000만~3,000만원에 거래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택배차량 부족이 범법자 양산을 넘어 전자상거래 성장의 걸림돌이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8월말 ‘화물운송시장 발전방안’을 통해 수급 조절제를 폐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택배용 차량 신규 허가나 증차를 원하는 개인이나 법인 등 사업자는 해당 지자체에 신청하면 20일 가량 후에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업계와 50여차례 이상 협의를 거쳐 마련된 사안으로, 차량 부족 문제가 심각한 1.5톤 미만 소형화물차를 대상으로 했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측은 수급조절제 폐지로 ‘화물차 공급과잉→운송료 하락→화물노동자 생계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지만, 이번 방안의 혜택을 누리는 사업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급 조절제 폐지 방안의 핵심은 쿠팡 등 기존 사업자의 불편 해소와 더불어 제2의 쿠팡 등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출이지만 그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법인 사업자가 진입하려면 ▦직영운영 의무화 ▦차량 20대 이상 보유 ▦물류창고 등 자체 인프라 구축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규 운송법인을 설립한 후 화물차 구입에, 택배기사까지 직접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제한적인 내수시장 규모를 고려할 때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이 동력이 강하지는 않을 거란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화물차량은 43만7,500대이며, 이 중 화물연대 가입 차량은 1만4,000여대(3.2%)에 불과한 상황이다. 정부도 강경하다. 최정호 국토부 2차관은 이날 “화물연대가 무리한 요구사항을 내세우며 국가물류를 볼모로 집단운송거부를 강행하고 있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문제는 강성인 컨테이너 차량 운전자들이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컨테이너 차량 2만1,757대 중 7,000여대가 화물연대에 가입해 있다. 과거 2012년 파업도 이들이 주도했다. 최시영 아주대 물류SCM학과 교수는 “수급 조절제 폐지와 별개로 최저임금제도와 같은 최저 배송수수료제를 도입해 택배 기사들에게 최소한의 생활 조건을 보장해주는 식의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