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여전한 사설감옥화 위험
보호자 2명-전문의에 달렸던 절차
의사-법관 구성 심사위에 맡겼지만
전국 5곳 병원으론 자료검토 벅차
독일선 판사가 직접 환자 만나
불법행위 차단할 구제절차 절실
2012년 10월 서울 노원구 A(81ㆍ여)씨 집에 정체불명의 남성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다짜고짜 A씨를 강제로 끌어 내 구급차에 태운 뒤 경기 부천시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A씨는 정신이 멀쩡했지만 그의 재산을 노린 의붓딸 원모(36)씨가 의사와 공모해 A씨를 치매환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원씨는 자신을 키워준 은혜를 저버린 것도 모자라 초등학생 딸까지 부양이 어렵자 알코올중독이라며 정신병원으로 보냈다. 서울북부지법은 지난해 10월 원씨에게 존속감금죄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원씨가 정신병원을 ‘사설감옥’처럼 쓸 수 있었던 건 본인 동의 없이도 보호자 2명과 전문의 진단만 있으면 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정신보건법 24조 1항(보호입원) 때문이다. 이 규정은 입원을 거부하는 정신질환자를 빠르게 치료할 목적으로 제정됐으나 ‘신속절차’를 악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런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해당 조항을 손본 법 개정안을 내놔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했다(2017년 5월 시행 예정).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도 이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입원 결정이 의사 한 명의 진단에만 의존해 객관성이 떨어지는데다 환자의 자기변호권도 무시되는 점을 지적했다.
문제는 환자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헌재 권고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도적 지원책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개정 정신보건법은 복지부 산하에 국립정신병원 출신 정신과전문의와 법관 10~30여명으로 구성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심사위)’를 별도로 설치하고 입원 1개월 내에 심사하도록 했다. 이렇게 입원한 후 계속입원 여부를 6개월마다 심사하던 것에서 3개월마다 심사하도록 단축해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하지만 심사위 규모가 작아 재심사가 형식적 절차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보호입원하는 환자가 하루 평균 100명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전국 5곳에 불과한 국립정신병원에서 입원자 자료를 꼼꼼하게 들여다 보기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에서는 판사가 직접 환자를 만나 입원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지만 개정법은 해당 절차를 조사보조원 면담 정도로 축소해 환자 스스로 의견을 밝힐 기본권은 여전히 보장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속입원 심사기간 단축 역시 근본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요양급여를 노린 정신병원들 사이에서는 계속입원 심사 직전 환자를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기는 ‘회전문 입원’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이런 식으로 정신병원들끼리 짜고 환자 한 명을 290일이나 불법 입원시킨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6일 “(환자가 퇴원을 요구하는) 인신구제청구 제도를 활용해 병원에서 나온다고 해도 보호자가 재동의하면 얼마든지 재입원이 가능하다”며 “계속입원 심사기간만 단축할 게 아니라 병원의 불법 행위를 방지하고 법적 구제절차의 효력을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법 개정 후 사회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벼운 정신질환자를 돌볼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1960년대 강제입원 요건을 강화한 뒤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 복귀했지만 상당수가 노숙자나 범법자로 전락했다”며 “그룹홈 개설 등 복지지원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정신보건정책과 관계자는 “보호입원 대상이 되는 정신질환을 축소하는 등 강제입원율을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개정 법 시행 전이라 미흡한 점이 많으나 헌재 결정을 바탕으로 개정법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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