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차선이 아니면 차악을 뽑는 과정이니까요...”
제40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지켜본 한 체육인이 나지막이 되뇌었다.
이기흥(61) 회장의 당선을 놓고 두 시선이 공존한다. 모 관계자는 “비리 단체의 전 수장이 체육회장이 됐다. 체육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통탄했다. 이 회장은 2010년 1월부터 6년 간 수영연맹을 이끌다가 지난 3월 사임했다. 수영연맹 전ㆍ현직 임원이 부당한 금품 거래와 공금 횡령으로 대거 재판에 넘겨졌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 과정에서 문체부에 ‘반기’를 든 이 회장을 찍어내기 위한 표적수사라는 말이 파다했지만 수영연맹 비리가 심각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반면 이번 선거는 문체부의 간섭에 따른 체육인들의 ‘독립선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체육인들이 관치 체육에 심각한 염증을 느꼈다는 의미다.
어쨌든 변함없는 건 이 회장이 2021년 2월까지 체육회를 이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체육인들이 이 회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 회장도 “군림하는 회장이 아닌 머슴, 일꾼 같은 회장이 되겠다”는 약속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의무가 있다. 특히 이 회장이 줄기차게 강조해온 재정자립은 수많은 전임 회장들이 강조하고도 결국 해결하지 못한 숙원사업, 즉 ‘공약(空約)’이었다. 남다른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 이 회장이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체육회의 재정자립도는 5% 미만이다. 통합 전인 지난해 체육회 예산은 약 2,066억 원이었다. 이중 95%가 국민체육진흥기금이다. 이 기금은 문체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나오는 돈이다. 국민 세금이나 다름없다. 통합으로 자립도는 더욱 낮아졌다. 작년 국민생활체육회 1,890억 원은 99%가 체육진흥기금이다. 두 단체가 합쳐지면서 자립도는 더 떨어졌다. 통합 전이나 후나 체육회는 자체 예산으로는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이 회장은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의 이익금 중 일부가 체육회 몫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스포츠토토로 인한 연간 수익금 약 1조1,000억 원 중 10%는 경기주최단체지원금(프로축구, 프로농구 등) 등으로 나가고 나머지 90%인 약 1조 원은 체육 복지 예산에 쓰인다. 이 회장은 이 1조 원의 일부를 체육회 예산으로 돌리겠다는 복안이다.
이 같은 이 회장의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산 넘어 산’이다.
일단 체육진흥공단의 반발이 거세다. 공단 관계자는 “그 돈은 장애인 체육, 인재육성, 지방 생활체육 등에 쓰이는 체육복지 예산이다. 이 돈을 체육회가 가져가겠다는 건 엘리트 체육만 육성하는 옛날로 돌아가겠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다”고 비판했다. 기금 사용의 법적 근거가 되는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하는 일도 쉽지 않다. 문체부와 기재부 등 관련 부처의 허락이 필요하고 국회 승인도 받아야 한다. 이 회장이 그 동안 정부 부처 특히 문체부와 대립각을 세워 온 점을 감안하면 원활한 협조가 이뤄질지 의구심이 든다. 이번 체육회장 선거에서 이 회장 아닌 타후보를 지지했던 체육 관계자는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 아니었겠느냐. 현실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당선 직후 “체육회 내부적인 일은 상임감사와 사무총장이 해도 충분하다. 나는 (밖으로) 나가서 재정자립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했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국회의원들을 만나 재정자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해를 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의 측근은 “이 회장의 스킨십이라면 갈등을 봉합하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공동기획: 대한체육회ㆍ한국일보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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