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로 인한 피해가 수용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수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고, 주택 수백 채와 차량 1,000대가 침수됐다. 가을걷이를 앞둔 농경지도 7,000㏊ 이상 침수됐다. 통과시간이 불과 한나절에 불과했고, 피해지역이 제주와 남부에 국한된 소형 태풍치고는 생채기가 지나치게 크다. 태풍 차바 뿐만이 아니다. 올해는 유독 자연재해가 잦다. 얼마 전엔 올여름 지구촌을 강타한 폭염은 11만년 전 간빙기 수준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럽과 남아시아 지역에서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폭염이 계속됐다. 지구온난화가 기상이변의 중심에 있다는 분석이 어김없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태풍 차바나 폭염을 바라보는 시선은 명확히 이중적이다. 피해 발생 시점엔 자연재해의 영향력을 강하게 우려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도통 무관심하다. 지나고 나면 그뿐인 듯하다.
다행히 지구촌 전체적으로는 지구온난화를 징후가 아닌 이미 진행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 의회가 파리기후협정 비준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키면서 다음 달에 발효가 된다. 파리기후협정은 2020년부터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 지구의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섭씨 2도 이상 상승하는 것을 억제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2도 이상 상승하면 지구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2도 이내로 기온상승을 억제하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ppm 정도로 유지해야 하는데, 얼마 전 400ppm을 돌파했고, 현재도 연간 2~2.5ppm 정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처럼 온실가스 배출을 이어갈 경우 지구촌은 2050년경 한계에 다다른다. 올여름이 예년보다 평균보다 1도 정도 높은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투영하면, 2도 이상의 상승은 어떤 혼돈상태일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올해 초 국무총리실 산하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21세기 후반께 지구온난화로 인해 국내 인구가 2,00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경고한 것이 허언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근간에 쏟아진 지구온난화 기사에 달린 온라인의 댓글 중 아직도 많은 부분이 지구온난화 음모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급증하고 있는 자연재해는 태양 활동의 변동에 불과” “지구온난화설은 개발도상국들을 탄소배출제한으로 묶어두기 위한 기득권의 술책” 등이 그것이다. 이는 미국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인식과 유사하다. 트럼프가 몇 년 전 한 SNS를 통해 “지구온난화라는 개념은 중국에 의해, 중국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트리려는 목적”이라고 주장해 과학계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구온난화가 이미 현실의 일이 된 지금, 그것도 예상치를 훨씬 넘겨 가속화되는 시기에 이런 인식이 증폭되는 것은 기후변화대응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논쟁은 끝난 지 이미 오래다. 파리기후협정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정부도 이를 간과하지 않고, 인식 전환 캠페인을 더 고민해야 한다.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적은 화석연료가 아니라 오해와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금의 자연재해를 모두 지구온난화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는 걸 부인하긴 어렵다. 지구온난화 대응은 보험과 같다. 자동차사고가 발생할 거라고 확신하고 자동차보험을 드는 사람은 없다. 일어났을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보기 때문에 이를 예방하고 제어하는 차원에서 보험을 드는 것이다. 태풍 차바에서 보았던 지구온난화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전 에너지시민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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