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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칼럼] 어떤 자유와 존엄을 선택할 것인가

입력
2016.10.0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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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태어난다. 태어난 당사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은 스스로의 결정이 완전히 배제된, 전적으로 타율적인 사태이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벌거벗겨지고, 씻겨 지고, 볼이 잡아당겨 지고, 신생아실에 무력하게 눕혀진다. 이렇게 시작된 자신의 삶은, 건조하게 말하여, 부모의 성욕이 원인이 된 외인성(外因性) 사태이다.

태어난 이후의 삶은, 자유와 그에 기초한 존엄을 쟁취하기 위한 집요한 노력으로 상당 부분 채워진다. 양육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대소변을 가리고자 하며, 보호자의 물적 지원에서 벗어나 각자의 생업을 통해 밥을 벌어먹고자 하며, 자기 심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각종 억압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일정한 심적 물적 자원이 확보되면, 그 자원을 활용하여 자기 인생의 독특한 이야기를 쓴다.

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가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 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행되어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이다.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바로 생전에 연명치료거부 의사를 밝히는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일생 직조해온 자기 인생의 결말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석에서 탕진해버리기를 거부하는 마음이다. 비록 우연과 타율에 의해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해온 사람이라면, 하나의 수동적인 유전자 운반체를 넘어, 자유와 존엄을 가진 존재로서 삶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의 정의를 위해 싸워온 고(故) 백남기씨가 생전에 연명치료거부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사회 정의 실현만큼이나, 개인의 자유와 그에 따르는 존엄을 실현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병원에서 삼백일이 넘도록 자신이 원한 존엄을 기다리며 누워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표명한 연명치료거부의사는 그의 죽음을 존엄스럽게 만들기보다는, 주치의에 의해 선택적으로 이용되어 자신의 사인이 외인사(外因死)가 아닌 병사(病死)가 되는 근거가 되었다.

주치의는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병사로 기재한 것이 자신의 진정성 있는 판단에 기초한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간의 진정성이란 양파와도 같은 것이어서, 까고 까다 보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심리적 사태에 불과한 게 아닐까.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장기(臟器)는 없다. 진정성이란 개인의 입장을 표명하는 수사의 양식일 뿐,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가 말한 진정성이란 정부나 경찰과 같은 외부로부터 압력의 부재를 의미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의료인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가지고 병사라고 판단하였음을 역설하였다. 서울대병원의 특별조사위원장은, 사망진단서는 진료한 의사의 소관이므로 간섭할 수 없다고 말하여, 그 자유와 존엄을 존중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자신의 사망진단서는 그 주치의에게는 맡기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특별조사위원회의 모든 의사가 주치의의 판단이 자의적이라고 판단했음을 만천하에 공개하였다. 이로써 고 백남기씨의 존엄뿐 아니라 해당 주치의의 존엄도 위기에 놓였다.

오늘날 이 사회의 비극은, 죽은 환자의 존엄과 산 의사의 존엄 그 두 가지를 온전히 동시에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자유와 존엄 중에서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다. 이 선택에 이 사회 전체의 자유와 존엄이 달려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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