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고분인 경주 서봉총(瑞鳳塚) 남쪽 고분의 규모와 형태ㆍ축조 기법이 87년 만에 재개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4월부터 서봉총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남분이 장축 길이 25mㆍ단축 길이 20m(추정)의 타원형이며, 북분보다 늦게 조성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5일 밝혔다. 일제는 1920년대 두 차례 서봉총을 발굴했으나 시신을 묻는 장소에서 유물을 확보하는 데만 집중해 상세한 발굴 보고서를 남기지 않았다.
이번 조사에서는 막연하게 북분보다 다소 작은 원형으로 짐작됐던 서봉총 남분이 북분의 절반 크기인 타원형 무덤으로 드러났다. 서봉총 북분은 장축 길이 44m, 단축 길이 40m 정도로 추정된다. 또 남분을 축조할 때 북분의 호석(護石ㆍ무덤 둘레에 쌓은 돌)과 제사 토기를 파괴했다는 점으로 미뤄 북분이 남분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이 규명됐다.
이와 함께 남분과 북분을 잇는 축의 방향이 밝혀졌는데, 이를 통해 신라인들이 서봉총, 서봉황대, 금관총 등의 고분을 어떻게 배치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발굴 유물 중에는 남분 주변에서 9점, 북분 주변에서 3점이 출토된 큰항아리가 주목된다. 이는 신라 능묘 주위에서 나온 큰항아리 중 가장 많은 것이다.
노서리 129호분으로도 불리는 서봉총은 북분과 남분으로 구성된 표주박형 무덤이다. 일제강점기 조사는 학술 목적이 아니라 철도 기관차 차고를 건설하기 위해 봉분의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1926년 북분을 대상으로 진행된 발굴조사에서는 금관, 은제 합(盒) 등 금속품과 칠기, 토기 등이 나왔다. 당시 일본에 머물던 스웨덴 구스타프 아돌프 황태자가 경주를 방문해 봉황 모양의 금관을 수습해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 따 서봉총으로 명명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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