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사회 조선’ 이 명제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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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사회 조선’ 이 명제는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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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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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상이 지극한 효심의 표현인 것만은 아니다. 효를 통해 스스로를 차별화, 특권화하고자 하는 양반들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허남린 교수 한국학대회 논문

“유교적 핵심가치 충ㆍ효ㆍ열은

양반의 이익 위한 수단일 뿐

윤리라는 탈을 쓴 폭력 구조”

“조선 사회가 유교적이었다는 전제는 조선 사회에 대한 이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제사나 차례 등 흔히 말하는 조선시대 유교적 풍습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있다. 그런데 대개는 어정쩡하다. 현실사회주의권 붕괴 뒤 좌파들이 ‘그게 진짜 마르크스주의는 아니다’고 중얼대듯, ‘그게 진짜 유교는 아니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최로 5~7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열리는 학술대회 ‘세계한국학대회’에서 발표되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사회의 전란 극복 노력과 사회적 약자’라는 논문은 정색하고 ‘조선=유교’라는 등식을 비웃어버린다. 발표자는 캐나다 브리시티컬럼비아대 아시아학과에 적을 두고 있는 허남린 교수다.

조선이 유교사회가 아니었다면 어떤 사회였을까. 허 교수는 일부 양반들의 계급적 이익이 폭력적으로 관철된 사회로 간주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유교사회의 핵심가치라는 충(忠) 효(孝) 열(烈)을 공박한다.

우선 ‘충’. 허 교수는 임진왜란기 김덕령과 신충원의 사례를 든다. 경남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김덕령이건만, 충청에서 일어난 이몽학의 난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정강이뼈가 모두 부러지는 모진 고문 끝에 죽었다. 조령의 방비를 맡았던 신충원은 부족한 병사를 보충하려 나라에서 허가한 공명첩을 썼다는 이유로 교수형 대상으로 지목됐다. 뭘 좀 했답시고 나대지 말라는 신호다. “전란을 겪으면서 특권적 신분 질서와 경제 이익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절감한 사족들은 전쟁 이후 자신들의 이익 구조에 반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강조되는 충의 가치라도 이를 제거”해버렸다.

임진왜란 때 열녀, 열부를 기리기 위한 비, 문이 크게 늘어난다. 그러나 그게 바람직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효’도 마찬가지다. 유교의 3년상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국가 변란 시 상중이라도 조정에 나가 공무를 보는 ‘기복출사(起復出仕)’가 있었다. 그러나 임란 이후 기복출사는 사라졌다. 아무리 나라가 위급하고 왕이 다급해도 효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양반들에게 남달리 애틋한 돌연변이 효심 DNA가 있어서가 아니다. “효의 가치를 내세워 왕권이 강요할 수 있는 충의 가치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수 있었을 뿐더러 “3년상의 상례는 일년 내내 자기 노동에 생존을 의존해야 하고 양반들의 수탈경제에 종속됐던 백성과 노비에겐 그림의 떡”이었기 때문이다. 효란 계급적 특권화였을 뿐이다.

‘열’은 참혹한 수준이다. 광해군 3년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718명의 열녀 얘기가 실려있다. 얼굴 한번 못 본 남편이 죽었다고 따라 죽고, 모질지 못해 한번에 탁 죽지 못하니 보름씩 굶다 죽고, 애가 어리니 좀 키워놓고 몇 년 뒤 죽고…. 이런 얘기들의 향연이다. 그나마 그 기록이 사실이긴 한지 아무도 모른다. 허 교수는 “전통 중국 사회에서는 지혜, 변론, 정치권력, 내조 등 일곱 가지 가치를 구현한 여성을 ‘열녀(列女)’로 찬양”했는데 조선의 양반들은 이를 오직 성적 순결이라는 열(烈) 하나로만 획일화했다고 지적했다. “윤리의 탈을 쓴 폭력구조” 그 자체라는 얘기다.

허 교수는 그래서 ‘조선은 유교사회’라는 명제는 거짓이라 결론짓는다. “현실적 이해를 실현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폭력이었지만 이를 유교적 가치 개념으로 분식”했을 뿐이며, 그 목표는 “전쟁 이후 기존의 권력과 특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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