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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軍 ‘성가신’ 유럽 인권조약, 사실상 무시 나선다

입력
2016.10.0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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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ㆍ이라크 민간인 피해 탓

“로펌 소송에 10억파운드 비용”

브렉시트 더불어 脫EU 움직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버밍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 첫날인 2일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버밍엄=PA AP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버밍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 첫날인 2일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버밍엄=PA AP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 정부가 자국군의 군사작전을 유럽 인권 조약(ECHR)의 적용에서 제외하겠다고 선언했다. 메이 총리는 취임 이전부터 ECHR로부터의 탈퇴를 주장해 온 바 있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계획을 제시한 메이 총리가 ‘성가신’ 인권 조약부터 우선 빠져 나오려는 시도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메이 총리는 4일(현지시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과 공동으로 영국군에 대한 ECHR 조항 적용을 ‘사실상 무시’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메이 총리는 “영국군을 향한 ‘성가신 주장’과 이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산업(로펌)이 성행하고 있으며 이를 중단시킬 것”이라 말했다.

영국군과 영국 내 우파 성향 싱크탱크, 일간 텔레그래프와 더타임스 등 언론은 영국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견돼 활동하면서 전투 중 민간인 살상으로 인해 지나치게 많은 소송을 겪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국방부는 “소수 로펌이 전쟁터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권 침해로 몰고 가 최소 10억파운드의 비용을 유발했다”는 주장을 폈다.

인권단체는 즉각 비판의 날을 세웠다. 영국 인권 시민단체 ‘리버티’의 마사 스퍼리어 대표는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참전했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군에 제기되는 인권쟁점을 무시하겠다는 주장은 모순이자 이중잣대”라고 지적했다. 잉글랜드ㆍ웨일즈변호사협회는 “법률에 입각한 문제제기를 정치적인 이유로 억압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맞서 변호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쟁이나 공공 위기 상황을 근거로 ECHR을 일정 기간 무시할 수 있는 권리는 모든 가입국에 주어져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테러 직후, 터키는 7월 쿠데타 직후 ECHR의 적용을 일시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영국 정부 역시 영국군이 전쟁에 임할 때마다 매번 ECHR의 적용을 일시 중지할지 여부를 개별 결정할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 선언이 결국 영국의 ECHR 탈퇴를 주장해 온 메이 총리의 ECHR 탈퇴를 위한 사전포석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에서 내무장관을 맡았던 메이 총리는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하면서도 “EU 탈퇴와 무관하게 우리가 인권법을 수정하려면 ECHR부터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 때 영국 내 무슬림 극단주의자를 추방하고 수감자의 투표권을 박탈하는 등 안보강화를 위한 조치에 인권법이 방해가 된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영국 인권법은 1998년 ECHR에 준해 개정됐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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