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초동수사 탓 5년 만에 검거
11개 보험 가입 뒤 중병 방치
2011년 1월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주택에서 송모(당시 44ㆍ여)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송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진 정신지체에, 신우신염과 직장 궤양, 알코올성 간질환 등을 앓아 왔다. 발견 당시 그의 주변엔 지병에 치명적인 술과 담배를 오래 해왔던 듯 소주병과 꽁초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송씨의 사망을 경찰에 신고한 건 떨어져 살던 남편 조모(53)씨. 수사에 나선 안산단원경찰서는 부검을 원치 않고 아내의 죽음에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다는 조씨 진술과 병원 진단서 등을 근거로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했다.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달 22일 남편 조씨를 사기 및 유기치사 등 혐의로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 발생 5년7개월 만에 드러난 송씨 사망의 진실은 조씨가 저지른 치밀한 보험 사기극이었다.
일정한 직업 없이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조씨는 2009년 지인 소개로 송씨를 만나면서 사망보험금을 노린 사기범죄를 계획했다. 송씨가 이미 많은 질병에 시달리는데다 의사표현 능력도 떨어져 범행 대상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송씨와 만난 직후부터 1년 여간 내연녀 주모(38)씨와 짜고 송씨 명의로 11개 보험에 가입했다. 전화 통화로도 가입할 수 있는 상품만 고른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혼인 신고는 2010년 8월 했지만 두 달만 살다 집을 나왔다. 3개월 뒤 송씨는 숨을 거뒀고 수익자인 조씨는 사망보험금 3억여원을 챙길 수 있었다.
조사 결과 조씨는 과거에도 정신지체자들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 받아 사용한 혐의(사기)로 두 차례 기소돼 2000년과 2003년 처벌을 받은 동종범죄 전과자였다. 애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악화한 송씨의 건강 상태를 노린, 의도된 범죄였던 셈이다. 실제 그는 송씨에게 이따금 음식물과 술을 사다 줄 뿐 전혀 보살피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사망보험금 외에도 송씨가 생전 왼쪽 다리 골절상으로 받은 5,500만원 등 각종 보험 보상금 6,300여만원도 가로챘다.
보험 사기극이 5년 넘게 잠자고 있었던 건 경찰의 미흡한 초동 수사 탓이다. 사건을 처음 조사한 단원서는 보험 관련 질문에 조씨가 “보험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잡아 떼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단원서 관계자는 3일 “피해자가 평소 알코올성 간질환 등을 앓아 별다른 사망 혐의점이 없었고, 조씨 휴대폰 통신 수사와 계좌 추적에서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강서서는 2012년 3월 제보를 받아 4년여 간 재수사한 끝에 조씨의 사기 행각을 밝혀냈다. 강서서 관계자는 “송씨가 앞니가 없고 말을 더듬어 전화로 보험을 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피의자를 집중 추궁한 결과 자백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연녀 주씨도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