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난민할당제를 국회 동의 없이 수용할지 여부를 두고 추진한 헝가리 국민투표가 50%의 투표율을 밑돌며 무효화 됐다.
2일(현지시간) 헝가리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시행된 난민할당제 수용에 관한 국민투표의 공식 투표율은 43.91%로 집계됐다. 투표율 50%에서 한 표를 넘어야 성립되는 헝가리 국민투표 규정에 따라 이날 투표는 무효로 처리됐다. 최다 유권자가 거주하고 있는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투표율이 39.43%에 그쳐 20개 지역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투표는 무효가 됐지만 투표한 유권자의 98%가 넘는 325만5,000명이 난민할당제에 반대했다는 점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투표가 무산되면서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지만 유권자 표심을 들어 사실상 승리를 선언하면서 EU가 난민 할당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투표소를 찾지 않은 대부분의 유권자가 EU와 관계 악화를 우려했다는 점에서 야당과 시민단체는 오르반 총리가 투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표에 부쳐진 난민할당제는 EU가 지난해 9월 그리스, 이탈리아에 들어온 난민 16만명을 회원국에 의무 할당하는 내용으로 고안, 통과시킨 제도다. EU는 앞서 1997년부터 유럽 진입 난민은 최초 입국한 나라에서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는 ‘더블린 조약’을 준수해 왔으나, 갈수록 격화하는 지중해 연안국의 난민 사태에 직면한 후 할당제를 논의했다. 헝가리와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강력 반발했고 오르반 총리는 7월 국민투표 카드를 꺼냈다.
오르반 총리는 이후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해 난민할당제 반대 캠페인을 진행했다. 전국 2만여개의 광고물 부착 장소 중 6,000여개를 정부가 선점한 채 국민투표 캠페인을 벌인 오르반 총리는 ‘빅테이터’(이름 ‘Victor’와 독재자 ‘dictator’의 합성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지난 6월 2016유로 경기 때는 핵심 광고 시간인 전후반 사이 휴식 시간에 난민할당제 반대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편 유권자들이 높은 기권율을 통해 EU와 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만큼 이번 투표는 오르반 정권의 패배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헝가리 정치 전문가인 라즐로 로비는 영국 일간 가디언 인터뷰에서 “320만명의 유권자가 반대 의사를 밝혀 상황이 애매해 보이지만 사실상 오르반이 패했다고 봐야 한다”며 “EU로서는 국민투표가 무효가 됐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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