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뭇 여심을 홀린 마성의 남자였다. 그저 지그시 미소 지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거렸을 뿐인데 안방극장은 난리가 났다. 오토바이 라이딩은 다정하고 반듯한 이 남자의 반항아적 면모를 보여주는 반전 취미다. 그가 평소보다 셔츠 단추를 한두 개 더 풀고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자 곧바로 시중의 악기상가에선 색소폰이 동났다.
MBC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로 세상을 한바탕 들었다 놨던 이 남자는 22년이 흘러 대전의 한 재래시장에서 아내와 함께 닭을 튀기고 있다. 생계 문제로 꿈을 접었던 그는 다시 양복 재단사 일을 하겠다면서 서울로 가출을 감행한다. 아내의 구박을 받으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코믹하고 우스꽝스럽지만, 그럼에도 이 남자의 판타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민소매 차림으로 기름솥에서 닭을 건져내는 팔뚝의 알통은 변함없이 탄탄하고, 재단사로 복귀해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으니 색소폰 불던 젊은 날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KBS2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배삼도로 살고 있는 배우 차인표(49)는 “40~50대가 됐다고 해서 꼭 배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전국의 중년 남자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웃긴 남자
차인표의 생활형 코미디 연기는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인기를 끄는 원동력이다. 우악스럽고 생활력 강한 아내 복선녀 역의 라미란도 한몫 거든다. 왜 이제야 만났나 싶을 정도로 두 배우의 호흡이 좋다.
지지고 볶다가도 애잔한 부부애를 보여주는 배삼도와 복선녀 덕분에 이 드라마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양복 일을 반대하는 복선녀가 가짜 분신 소동을 벌이고 이에 맞서 배삼도가 일부러 폭행시비에 휘말려 감옥에 가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등 다소 황당한 설정이 등장해도 두 배우의 맛깔스러운 연기 덕에 무난하게 설득된다. 이 드라마가 차인표의 배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차인표의 개성 있는 연기가 다소 뻔하고 밋밋한 이야기에 포인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있다”며 “여전히 근육질 몸매에 양복이 잘 어울리는 멋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책 맞은 면모까지 능수능란하게 표현해 중년여성 시청자들에게 판타지와 친근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하지만 차인표를 잘 아는 관계자들은 그의 연기 변신에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다. 워낙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인데, 그에게 딱 맞는 작품을 너무 늦게 만난 것뿐이라는 얘기다. 라미란은 제작발표회에서 “차인표가 내 까불거리는 연기를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너무 재미있다”며 “어디로 튈지 몰라 조마조마할 정도”라고 말했다. 제작사 관계자도 “실제로 촬영장에서 배삼도와 복순녀의 코믹한 장면을 리드하는 사람은 차인표”라고 전한다.
정 평론가는 “젊은 시절에 잘생기고 부유한 실장님이나 재벌 3세 주인공을 도맡아 하던 배우가 중년기에 들어서 나이에 맞게 이미지를 바꾸며 연기폭을 넓힌 성공사례로 꼽을 만하다”고 말했다.
화려한 시작과 끝없는 변신
차인표의 시작은 창대했다. 199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단역 생활 1년 만에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주인공을 꿰차며 스타덤에 올랐다. ‘차인표 현상’이라고까지 불릴 정도였다. 당시 언론들은 “장동건과 최수종 등 기존의 남자 스타들의 경우 얼굴은 잘생겼지만 유약한 이미지를 띠는 반면 차인표는 보디빌딩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와 해외 유학파 이미지로 새로운 스타를 갈망하는 여성들을 사로잡았다”고 분석했다.
1987년 미국 유학을 떠나 뉴저지주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해운회사에서 1년간 근무했던 그의 경력은 배우 생활 초창기에 큰 역할을 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경우도 영어에 능숙한 배우가 필요해 차인표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군 제대 후 복귀작이었던 MBC ‘별은 내 가슴에’(1997)에서도 그는 재력과 능력을 모두 갖춘 남자였다. 군 복무 시절 출연했던 국방부 제작 드라마 KBS ‘남자 만들기’(1995)와 ‘신고합니다’(1996)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의 강인하고 진중한 이미지는 더 강화됐다.
하지만 차인표는 연기 변신을 갈망했다. MBC ‘왕초’(1999)에선 거지왕 김춘삼을 연기하며 반듯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시도했고, MBC ‘그 여자네 집’(2001)에선 경제적 갈등과 집안 문제에 맞닥뜨린 맞벌이 부부를 현실감 있게 연기해 MBC 연기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악역이나 야비한 캐릭터도 마다하지 않았다. SBS ‘홍콩 익스프레스’(2005)에서 선보인 분노 연기는 ‘분노의 양치질’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지금도 여러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고 있다. 그러나 초창기 이미지 때문인지 연기 변신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의사 등 사회고위층 역할이 그에게 많이 주어졌다. MBC ‘하얀 거탑’(2007)에선 냉철한 의사였고, 영화 ‘감기’(2013)에선 국민을 살리려는 강직한 대통령이었다. 지난해 방영된 JTBC ‘디데이’에서는 야심을 지닌 장관으로 등장했다.
그의 반듯한 이미지는 실생활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해외 구호 활동과 기부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사회적으로 건전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가 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후 해외구호단체 후원자가 수천명이나 늘었다. 탈북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크로싱’(2008)에 출연한 것도 평소 신념 때문이었다. 그가 할리우드 영화 ‘007 어나더데이’(2002) 출연 제안을 받고도 남북문제를 왜곡한다는 이유로 출연을 고사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차인표 측 관계자는 “출연작을 고를 때 아이들과 함께 보기 어려운 비윤리적인 작품이나 사회적으로 왜곡된 가치관을 심을 수 있는 작품은 되도록 지양하려 한다”고 전했다. 차인표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항만회사를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두 딸을 공개 입양해 키우며 사회 인식까지 바꾸고 있다.
장편소설 ‘잘가요 언덕’과 ‘오늘예보’를 출간하며 다방면에 재능을 드러냈던 차인표는 창작에 대한 관심을 더 확장하고 있다. 최근엔 영화 연출을 준비 중이다. 얼마 전 ‘50’이란 제목의 25분짜리 단편영화도 완성했다. 차인표 측 관계자는 “책을 각색해 영화화를 고민하고 있고 틈틈이 글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차인표가 여전히 멋을 잃지 않는 건, 근육질 몸매가 아닌 도전정신 때문이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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