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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도둑 조심…안전불감증이 낳은 멕시코 참극

입력
2016.10.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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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맞았어!"

중남미를 여행한다면 누구나 한번쯤 당할 불쾌한 현실이다. 사기는 여행의 동반자다. 평생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탕탕과 늘 잃어버리는 게 습관인 내게도 이런 일은 '당연히' 터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난을 당한 쪽은 내가 아닌 탕탕이었다. 안전불감증이 초래한 참극이었다.

한 레스토랑 벽에 붙은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고
한 레스토랑 벽에 붙은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고
과나후아토는 동서남북 골목 구석구석 여행자의 감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도시다.
과나후아토는 동서남북 골목 구석구석 여행자의 감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도시다.

멕시코의 과나후아토(Guanajuato)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을 박물관처럼 보존한 도시다. 모네의 화폭을 16~19세기로 정형화한다면 이곳일까? 햇빛까지 보태면 눈이 시리다. 여느 가이드북도 그 흔한 ‘주의’ 문구를 열거하지 않는다. 아니 멕시코에서도 가장 '안전한' 도시라고 보장하는 가이드북도 많다. 진정한 공포 영화는 언제나 평화로운 마을에서 의뭉스런 사건이 벌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전상 낮에 이동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건만, 아과스칼리엔테스(Aguascalientes)에서 과나후아토로 향하는 건 오직 야간버스뿐이었다. 결국,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시내로 접어든 우리는 미리 점 찍어 둔 숙소 앞까지 택시를 탔다. 하나 굳게 닫힌 문이 우릴 좌절시켰고, 대신 바로 앞 호스텔의 여러 펄럭이는 국기에 사로잡혔다. 지푸라기처럼 그 도미토리에 짐을 풀었다.

호스텔 이름은 '호스탈 델 캄파네로(Hostal del Campanero)'. 캄파네로는 스페인어로 '밖에서 망보는 도둑'이란 뜻도 있었다.
호스텔 이름은 '호스탈 델 캄파네로(Hostal del Campanero)'. 캄파네로는 스페인어로 '밖에서 망보는 도둑'이란 뜻도 있었다.

과나후아토에서 3일째 밤, 우린 근사한 식당에서 스스로에게 한 턱 쏘기로 했다. 여행은 가끔 지나치게 행복해 괜한 불안감이 엄습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날이 딱 그랬다. 도미토리에 돌아오니 우리 독차지였다. 어젯밤 자정에 체크인한 파나마 출신의 사내가 보이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데 요상하게 탕탕이 부산스러웠다. 숙소에 놔둔 큰 배낭까지 열고 닫기를 여러 번, 곧 가슴이 땅바닥까지 내려앉았다.

"망원 렌즈가 없어졌어! 랩탑도! 하드 디스크도! 그리고..."

탕탕! 어질어질, 후들후들, 메슥메슥. 아픔을 묘사하는 온갖 부사가 날 주저앉혔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악몽에서 깨길 바랐지만 현실은 부정되지 않았다. 탕탕의 자물쇠로 잠근 사물함 안의 물건이 도둑맞았다. 타깃은 그의 카메라 가방이었다. 당장 화보 촬영을 해도 문제 없을 일명 '이동하는 스튜디오'였다. 다행히 탕탕은 3대의 카메라(2대의 DSLR과 액션캠)를 들고 외출한 상황이었으나 일부 렌즈와 노트북은 숙소에 놓아 둔 상태였다.

그는 쏜살같이 방을 나갔고, 격앙된 목소리로 숙소 직원을 불러 도난 사실을 호소했다. 문제는 이 놈(정중은 사양한다)의 태도였다. 영어를 곧잘 하던 그가 갑자기 스페인어로만 대응하며 뻣뻣하게 구는 게 아닌가. 우리가 바란 건 최소한의 성의였다. 어제 도미토리에 함께 묵었던 놈의 신상명세를 경찰에 신고하는 정도의 기본 예의 말이다. 직원은 뒷짐만 지고 탕탕은 다시 '우리의 친구' 경찰을 부르겠다고 불을 뿜으며 나갔다.

10분조차 1시간 같았던 길고도 질긴 기다림. 잡고 싶은데 잡히는 게 없고, 뭔가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다. 눈 뜨고 가위에 눌리는 기분이었다. 단, 도둑으로 지목된 그 놈의 침대에서 서둘러 떠난 흔적을 발견했다. 놈이 두고 간 하얀 셔츠와 휴대폰 충전기, 칫솔, 세탁소 영수증... 어제 그가 밝힌 이름과 영수증 상의 이름은 달랐다. 파나마 출신이란 것조차 의심스러워진다. 호스텔 옥상에서 맥주를 나눠 마신 것조차 대담한 작전의 일부였을까.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탕탕이 돌아왔다. 숙소까지 어떻게 걸어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탈진 상태였다. 내일 영어가 가능한 경찰과 지문 조사자 등이 숙소를 방문할 예정이라 했다. 숙소 측은 숙박자의 여권조차 확인하지 않고 그냥 사람을 들여보낸 모양이었다(이후 이것이 일반적이란 걸 알게 되었다). 탕탕은 그날 생애 가장 힘든 밤을 보냈다.

도둑을 추적할만한 일말의 꼬리. 미국드라마에서 볼 법한 지문 체취의 현장을 몸소 목격했다.
도둑을 추적할만한 일말의 꼬리. 미국드라마에서 볼 법한 지문 체취의 현장을 몸소 목격했다.

경찰이 숙소에 도착했다. 전략가 탕탕은 숙소가 투숙객 체크도 제대로 안 했으니 탈세범이란 혐의까지 고한 모양이었다. 한 경찰은 바로 숙박 체크 리스트를 확인하고, 지문 채취 전문가는 그의 침대에 있던 물품과 카메라 가방에서 동일한 지문을 채취하는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수고는 다른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일단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실내 감시 카메라가 있는지, 여권을 체크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했다. 다음날 목격자인 나 역시 경찰에 출두해 부모님 이름까지 토해 내는(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천국의 과나후아토가 모든 사람을 의심하는 지옥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과나후아토를 멕시코에서도 손꼽는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 피필라 기념물(Monumento al Pípila) 앞에서 도시의 매력은 폭발적이다. @rvé around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과나후아토를 멕시코에서도 손꼽는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 피필라 기념물(Monumento al Pípila) 앞에서 도시의 매력은 폭발적이다. @rvé around

도둑은 아마 블랙마켓에서 푼돈을 얻으려고 훔쳤을 것이다. 탕탕의 피해는 푼돈이 아니다. 금전상의 문제가 아니다. 놈은 그의 삶과 우리의 미래를 훔친 중죄인이었다. 1년 넘는 기록 창고(특히 사진)는 재가 되어 버리고, 개인 정보가 노출되어 불안에 떨고, 대체 물품을 찾느라 멕시코시티의 골목골목까지 헤맸다. 불어 자판 노트북을 구하겠다고 프랑스 관할사무소 혹은 관련 아카데미까지 얼마나 수소문했던가. 펜탁스 카메라용 렌즈는 구하지 못해 끝내 한국에서 주문 배송했다. 수습할수록 더 어질러진 기분이었다. 고백하건대, 우린 각자 숨어 우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멕시코 경찰에게 잊을만하면 메일을 띄운다. 그들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아직 찾지 못하였나이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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