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을 주도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두 재단을 통합해 탈바꿈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도리어 권력형 비리를 덮기 위한 꼬리 자르기란 의구심 속에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도 꼼짝 못할 만큼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 재단 설립 과정부터가 풀어야 할 의혹이다. 대통령 기호에 맞춘 사업과 비선들이 개입한 깜깜이 재단 운영, 각종 의혹에 ‘모르쇠’로 발뺌하다가 갑작스레 스스로 공중분해 되기까지 두 재단을 둘러싼 풀리지 않은 의혹들을 짚어 봤다.
정부와 대기업을 꼭두각시로… ‘청와대 기획설’
미르ㆍ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 중 핵심은 ‘과연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설립했느냐’다. 두 재단을 설립한 전경련은 한류(韓流)와 대한민국 스포츠를 전세계로 확산시킬 필요성에 공감한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출연해 만든 재단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설득력을 잃은 상태다. 대기업들의 자금 모금이 내부 심의 규정을 어기는 편법까지 불사하며 무리하게 쫓기듯 이뤄졌다는 정황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야권은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라고 꾸준히 주장하며, 배후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지목하고 있다.
당장 이번 국정감사장에서 안 수석이 전경련에 지시해 미르재단의 모금액을 대기업들에게 할당했다는 취지의 발언이 미르재단에 돈을 낸 대기업 관계자의 입을 빌어 공개됐다. 실제 야권과 대기업에 따르면, 전경련은 지난해 10월 25일 미르재단 설립 관여의 주체로 청와대가 적시된 협조 문건을 내려 보냈고, 해당 기업관계자들은 다음날 오전 서울 강남의 팔래스호텔에 모여 재산 출연에 필요한 서류를 일사불란하게 제출하는 등 군사작전 펼치듯 움직였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례적으로 재단 설립 신청서를 받기 위해 서울까지 출장서비스를 나오는 등 무리수를 뒀다. 특혜를 등에 업고 두 재단은 단 하루 만에 설립 허가를 받았다.
미르재단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10월 26일’에 맞춰 재단 설립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특별한 ‘하명’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안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는 줄곧 사실 무근이라거나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정권의 브로커...전경련의 이상행보
전경련이 사실상 정권의 대리인으로 나선 배경도 주목된다. 전경련은 이번 정권 들어 보수 우익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영리 기부단체에서 활동해온 한 인사는 “전경련이 박정희 대통령 때 설립된 만큼, 현 정권이 ‘정권의 쌈짓돈 창고’ 성격으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국회에서 예산 끌어오기가 어려워지면서 기업 옥죄기가 더 심화된 것이고, 기업들은 보험 성격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한 것이다”고 했다. 전경련이 두 재단의 설립자로 총대를 멘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순실과 차은택…대통령 기호에 맞춘 사업들
대기업들이 돈을 냈지만, 실상 재단 운영 과정에선 대통령 측근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 것도 문제다. 먼저 대통령의 40년 측근으로 손꼽히는 최순실씨가 자신이 다니던 스포츠마사지센터 원장인 정동춘씨를 K스포츠재단의 이사장으로 앉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르재단의 경우도 최씨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광고감독 차은택씨의 대학원 은사인 김형수 연세대 교수가 이사장을 맡았다. 미르재단 관계자가 차씨의 미르재단 인사 전횡을 폭로할 만큼 차씨의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재단이 대통령 관심사를 반영한 맞춤형 사업을 벌이는 것도 논란거리다. 미르재단은 지난 6월 박 대통령의 프랑스 방문 때 한식 시식회를 주관했고, K스포츠재단은 지난 5월 박 대통령의 이라크 순방 때 태권도 시범단 공연을 주최했다. 대통령 순방 행사에는 상당한 경력을 갖춘 단체가 선정되는 게 관례인 데 비해, 신생 단체인 이들의 급부상은 관련 업계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들이다.
제2의 일해재단…제3자 권력형 비리
때문에 야권에선 이번 미르ㆍK스포츠재단 사태의 본질을 “박근혜 대통령의 퇴임 이후 활동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연금 보험”이라고 보고 제2의 일해재단(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를 대비해 만든 재단)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대통령 스스로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다”고 딱 잘라 비판했고, 조윤선 문체부 장관도 “대통령이 퇴임 후에 두 재단에 관여할 일은 없을 것이다”고 못 박았다. 적어도 대통령 스스로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 무근이라고 대국민 해명을 한 셈이다. 대통령보다는 주변 측근들이 전리품 차원에서 챙긴 제3자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급하게 덮었지만…정권 뒤에도 남을 뇌관
전경련이 서둘러 두 재단의 해산 결정을 내린 것 자체가 의혹을 키우고 있다. 야권은 증거인멸 작업이라고 비판했는데, 당장 기업들 사이에서 두 재단 관련 문서를 파기하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야권에선 사실상의 ‘재단 세탁’이라며 재단 해체와 별개로 진상규명 작업을 벼르고 있다. 당장 시민단체가 고발장을 접수해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졌고, 야당 교육문화체육위원회는 문체부를 대상으로 두 재단의 관리감독 부실을 문제 삼아 감사원 감사 청구도 나설 태세다. 여전히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나 특검 카드도 언제든 나올 수 있다.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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