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대상에 北군인까지 포함
대북 자극 수위 최고조로 올려
北 핵 폭주에 ‘말 폭주’로 대응
“임기 내 성과” 의지도 반영
野는 “대통령이 선전포고” 비난
박근혜 대통령이 1일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공개적으로 촉구해 ‘김정은 정권 붕괴 저격수’로 직접 나섰다. 박 대통령은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이 희망과 삶을 찾도록 길을 열어 놓을 테니,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의 분열과 붕괴를 유도하겠다는 상당히 과격한 발언이었다. 북한의 ‘핵 폭주’에 맞서, 박 대통령이 거침 없는 ‘말의 폭주’로 대응하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당 간부와 주민들을 향해 “핵과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는 데 동참해 달라”며 동요를 부추긴 데 이어, 1일엔 공개적으로 남한 행(行)을 권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탈북 대상에 “북한 군인”까지 포함시켜 북한 자극 수위를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또 “북한이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지 않으면,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이 갈수록 심화해 체제 균열과 내부 동요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시도하는 대신 김정은 체제를 흔들어 북핵 해법을 찾겠다는 뜻을 거듭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 주도로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을 제어할 수단이 별로 없는 만큼, 김정은 정권의 붕괴라는 극단적 시나리오에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과거 정권에서 금기로 여겨진 북한의 레짐 체인지(김정은 정권 교체)나 체제 붕괴 방안이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정부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일 “정부가 현실성 없는 북한 붕괴론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초강경 기조는 북한에 대한 분노가 워낙 큰 데다, 1년5개월 남은 대통령 임기 안에 북핵 관련 성과를 내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직접 ‘원톱’의 북한 공격수를 자처해 북한을 극단적으로 몰아 붙이면서 냉정하고 장기적인 대북 전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들은 ‘북한 압박의 목적은 핵 포기와 정상국가로의 복귀이지, 체제 붕괴 자체가 아니다’라는 정부 당국자들의 입장과 온도 차가 난다. 박 대통령의 자극적 대북 비판이 반복돼 발언의 무게감과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또 박 대통령이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촉구한 것 자체가 위험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무성하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김정은 정권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것”이라며 “미국은 내년쯤 대북 대화 재개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전쟁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불량국가이자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다뤄야 하는데도, 박 대통령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발언을 했다”고 비판했다.
정부 당국자는 “대규모 탈북 사태가 현실화한다 해도, 북한 주민들을 우리 사회에 흡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난민 수용소를 설치하는 수준의 준비 정도만 돼 있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탈북 유도 발언이 후속 대책 등을 감안하지 않은, 감정적인 발언이라는 뜻이다.
야당의 반응도 싸늘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북한 붕괴와 주민들의 귀순을 거론한 것은 대북 압박이 아닌 선전포고”라며 “북한은 전쟁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통일의 파트너”라고 지적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지만, 그렇게 한다고 한반도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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