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
사립대 초빙교수로 개강 앞두고
논문 점수 미달로 ‘부적합’ 판정
“제도 개선됐으면…” 아쉬움 토로
“15년간 국제형사재판관으로 일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지만 (강의가 무산돼) 아쉽습니다.”
권오곤(63ㆍ사법연수원 9기ㆍ사진) 김앤장 법률사무소 초대 국제법연구소장이 최근 한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부터 ‘강의 불가’ 통보를 받고 난 뒤 2일 한국일보에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국제형사재판관으로 15년간 부임하면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부소장까지 지내며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형사전문가로 평가 받고 있지만, 교원 자격 요건인 논문 점수가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쌓은 경험을 후학들과 나누지 못하게 됐다.
권 소장 등에 따르면 그는 서울의 한 사립대 로스쿨에서 초빙석좌교수 자격으로 올해 2학기 국제형사법(3학점) 강의를 맡기로 돼 있었다. 권 소장은 법관으로 재직하며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할 기회라고 판단해 미래의 법조인 앞에 서기로 결심했다. 올 8월 22일 시작될 예정으로 강의 시간표도 확정되고, 학생들의 수강신청도 이뤄졌다.
하지만 권 소장은 개강을 앞두고 갑자기 학교 측으로부터 “강의 배정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통보 2주 전 권 소장에게 논문 목록 제출을 요구해 검증한 대학 측은 권 소장의 논문 점수가 대한변호사협회 로스쿨평가위원회가 규정한 논문 평가 기준에 미달해 ‘강의 적합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권 소장은 “내가 썼던 국제재판 관련 논문들이 학회에서 발표되고 단행본으로 발간됐지만, 법학 관련 등재지에 실리지 못해 적합 기준인 150점보다 낮은 80점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권 소장은 그러면서 “논문을 썼든 안 썼든, 논문 점수가 얼마든 국제형사재판소에서 15년 경험한 걸 강의하면 할 얘기들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답답함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앞서 페이스북에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사건을 오랜 기간 재판장으로 진행하고, 2,600여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쓴 것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대한변협 회장이 경직된 제도나 실무를 개선해줬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변협 로스쿨 평가위원회는 로스쿨 인가를 담당하는 교육부 장관 직속 법학교육위원회의 논문 평가 기준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평가위원회가 적합한 교원이 강의를 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때문에 로스쿨 입장에선 ‘강의적합성’ 평가 항목에서 점수를 잃지 않도록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인 이형규 한양대 로스쿨 원장은 “권 소장이 엄격한 논문 실적이 요구되는 이론 강의가 아니라 실무 강의를 맡았다면 논문 점수로 강의를 못 맡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법률 실무에 출중한 사람이 논문 실적 때문에 강의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관련 규제를 손 볼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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