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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변신이 돋보였던 작품 4

입력
2016.10.0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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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은 배우가 아닌 영화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가치관을 성찰한다. 영화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건전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우성은 배우가 아닌 영화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가치관을 성찰한다. 영화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건전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43)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잘생겼다는 것을. 지나친 겸손으로 상대에게 좌절감을 안기는 대신 “매일 아침 거울 볼 때마다 잘생긴 걸 느낀다”며 재치로 응수한다. 호감을 사는 ‘자뻑’이다. 이런 그에게 요즘 ‘잘또’, 잘 생긴 또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외모가 연기 변신에 걸림돌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이렇다. “나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바꿀 수는 없다. 나만의 표현법을 찾아 일상의 생활감을 담아내는 게 중요하다.” 지난달 28일 개봉한 영화 ‘아수라’에서 정우성은 생존을 위해 악인들이 득시글거리는 아수라장에 뛰어든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그렸다. 악랄한 인물이지만 관객들의 분노를 사지도, 그렇다고 동정심을 자아내지도 않는 소시민적인 악인이다. 그의 잘생긴 외모보다 연기 변신이 돋보인다.

정우성은 늘 새로움에 도전해 왔다. 그는 “모든 작품은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확장시켜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정우성의 변신이 특별히 돋보였던 작품들을 찾아봤다.

‘똥개’의 정우성. 그에게 후줄근한 녹색 추리닝 바지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쇼이스트 제공
‘똥개’의 정우성. 그에게 후줄근한 녹색 추리닝 바지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쇼이스트 제공

잉여들의 청춘 스케치 ‘똥개’

멍들고 상처 입었지만 후련하다는 듯 해밝게 웃는 정우성의 순박한 얼굴이 포스터를 한가득 채운다. 그 위에 새겨진 두 글자 ‘똥개’(2003). 잘 생겨도 똥개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정우성은 조금은 망가지고 풀어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영화가 개봉한 2003년 당시엔 나름 파격이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주인공 철민(정우성)의 별명은 똥개다. 아무 생각 없이 빈둥거리며 집안 소일거리나 하는 게 그의 일과다. 수사반장인 아버지(김갑수)가 구박해도 철민은 주눅들지 않는다. 그의 곁엔 의리로 뭉친 MJK(밀양 주니어 클럽)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이권사업을 벌이던 지역유지 오덕만(양중경) 일당의 횡포에 크게 당하고, 철민과 친구들은 직접 응징에 나선다.

녹색 추리닝 바지와 낡은 셔츠, 덥수룩한 머리 그리고 어딘가 약간 모자란 듯 멍한 표정. 정우성이 그려낸 철민에게서 ‘인간미’가 폴폴 풍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청춘의 심드렁한 일상이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진다. ‘한심한 젊음이면 어떠냐. 싸울 열정이라도 있다면 됐다’(5393****)라는 관객평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비트’와 ‘태양은 없다’로 반항의 아이콘이자 청춘의 표상이 된 정우성이 ‘잉여의 대표주자’ 똥개 캐릭터를 얻다니 아이러니한 느낌도 든다. 정우성은 이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청춘스타에서 배우로 한 단계 나아갔다.

당초 곽경택 감독과는 다른 영화로 만날 예정이었다. 출연 약속을 해놓은 상황에서 중간에 작품이 대체됐다. 신뢰를 중요시한 정우성은 하차하지 않고 그대로 출연하기로 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영화 속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친근함이 느껴져 대리만족을 했다”고 말했다.

‘감시자들’의 정우성은 눈빛만으로도 스크린을 얼어붙게 만드는 냉혹한 카리스마를 뽐낸다. NEW 제공
‘감시자들’의 정우성은 눈빛만으로도 스크린을 얼어붙게 만드는 냉혹한 카리스마를 뽐낸다. NEW 제공

생애 첫 악역 ‘감시자들’

악당이 주인공인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정우성도 주로 선량하고 다정다감한 인물을 많이 연기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서도 ‘좋은 놈’ 담당이었다. 여기에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새드 무비’(2005) ‘데이지’(2006) ‘호우시절’(2009) 등 여러 멜로물을 통해 부드럽고 선한 이미지로 각인됐다.

‘감시자들’(2013)에서 정우성은 관객을 ‘배신’하는 모험을 택한다. 무자비한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생애 첫 악역 도전이었다.

이 영화는 범죄 대상에 대한 감시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경찰 내 특수조직 감시반의 활약을 담는다. 신분을 숨긴 채 오직 눈과 기억으로 타깃을 쫓는 감시 전문가들과 그들의 감시망을 피해 완벽 범죄를 이어가는 범죄자 간의 추격전이 긴박하게 펼쳐지며 전국관객 550만명을 동원했다.

정우성은 철저하게 짜인 계획에 의해 움직이며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는 비밀 범죄조직의 리더 제임스 역을 맡았다. 감정 없는 얼굴에선 냉기가 흐르고 작은 몸짓 하나에서도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악랄하지 않아서 더 냉혹한 악인이 그의 연기로 빚어졌다. 정우성이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는데, 연기력까지 호평 받았다. 정우성의 특장점 중 하나인 액션 연기는 특히 탁월했다.

정우성은 ‘감시자들’ 출연 이전 뜻하지 않게 스크린 공백기를 가졌다. 오위썬(오우삼) 감독이 제작하고 량쯔충(양자경)과 연기 호흡을 맞춘 중국영화 ‘검우강호’(2010)를 비롯해 몇몇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5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해 SBS ‘아테나: 전쟁의 여신’(2010)과 JTBC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2011)에 출연했다. ‘감시자들’로 돌아오기까지 한국영화 공백기가 4년 가량 됐다. 정우성은 “글로벌 프로젝트들이 몇 차례 무산되면서 배우로서 대중과 거리감이 생겼다”며 “하루 빨리 거리감을 좁히고 싶다는 생각에 ‘감시자들’ 이후 작품 활동을 쉬지 않고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준비해온 장편영화 연출도 자연스럽게 뒤로 미뤄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정우성(오른쪽)의 파격적인 치정 멜로가 궁금하다면 ‘마담 뺑덕’을 보자.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우성(오른쪽)의 파격적인 치정 멜로가 궁금하다면 ‘마담 뺑덕’을 보자.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파격 멜로 도전 ‘마담 뺑덕’

정우성은 멜로에서도 새로움에 도전했다. 기존의 로맨틱한 이미지를 잘 유지해 갈 수도 있었지만 정우성은 영화 ‘마담 뺑덕’(2014)으로 자신을 깨끗이 지워냈다. 이 영화를 설명하는 파격 멜로라는 말에는 정우성의 파격 연기도 포함된다.

제목 그대로 영화는 고전 소설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이야기다. 심청이 아닌 뺑덕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욕망을 탐색했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지방 소도시 문화센터의 문학강사로 내려온 교수 학규(정우성)와 단조로운 일상에 신물 난 순진한 소녀 덕이(이솜)의 사랑과 배신, 집착을 그렸다. 복직이 되자마자 서울로 돌아간 학규 앞에 몇 년 뒤 정체를 숨긴 덕이가 다시 나타나고, 학규의 딸 청이(박소영)가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세 사람은 파멸의 길에 들어선다. 정우성은 욕망을 좇다 그 대가로 눈이 멀어버린 학규 역을 맡아 당시 갓 데뷔한 신인 이솜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정우성은 영화를 위해 파격 노출도 감행했다. 정우성의 노출 연기는 처음이라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솜과 과감한 베드신도 소화했다. 당시 정우성은 “지금 내 나이에 탐욕과 방탕함을 잘 보여줄 수 있는데 더 나이 들어서 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며 “베드신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비록 저조한 성적을 거뒀지만, 정우성의 파격적인 변신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우성은 한 여자만을 위해 헌신하던 순애보의 주인공에서 벗어나 성숙하고 농밀한 멜로로 연기 세계를 넓혔다.

‘아수라’의 하드보일드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수라’의 하드보일드 액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악의 끝판왕 ‘아수라’

악의 끝판왕이 있다면 영화 ‘아수라’의 세계가 아닐까. 더 나쁜 사람과 덜 나쁜 사람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도 정우성의 나쁜 얼굴은 돋보인다. ‘아수라’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로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영화는 재개발 열풍이 불어 닥친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배경으로 한다. 정우성이 연기한 한도경은 이권을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을 뒤치다꺼리하며 돈을 받는 비리 형사다. 박성배를 잡아들이려는 독종 검사 김차인이 한도경의 약점을 잡아 압박해오고, 박성배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 김차인의 정보원 노릇까지 하게 된 한도경은 딜레마에 빠진다. 서로 물고 물리며 만들어진 악의 지옥도에서 빠져나올 곳은 없다.

주연부터 단역까지 모조리 악인들로 점철된 이 영화에서 정우성은 모든 인물의 연결고리이자 구심점 역할을 한다.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 결국엔 둘 모두를 종말로 이끄는 한도경의 몸부림이 스크린에 비장미를 불어넣는다. 정우성은 “한도경을 설명하는 한 단어는 스트레스”라며 “삶에 찌든 40대 중년 남자의 피로감을 담아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하려 했다”고 말했다.

‘감시자들’에 이어 또 다시 악역인데 ‘아우라’의 한도경에게서는 생활감이 더 묻어난다. 정우성도 “‘감시자들’의 제임스는 일상과 거리가 먼 인물이라 멋은 있지만 맛이 깊지는 않다”며 “현실에 발 붙인 한도경이 훨씬 몰입감이 컸고 연기하는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통증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맨몸 액션과 빠른 속도감으로 빚어진 카체이싱 등 폭력성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액션 장면들이 132분 내내 이어진다. 액션 연기를 잘하기로 소문난 정우성의 액션은 역시나 빛난다. 그는 “영화 속 세계가 너무나 처절해서 액션 연기가 힘들다는 생각도 못했다”면서 “무모하지 않되 부상 걱정 없이 덤비는 게 액션 연기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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