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에 돈이 오간다 해서 모두 상품은 아니다. 책을 사서 읽는 것은 스승을 만나 수업을 듣거나, 장인의 공방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기술을 배우는 것과 같다. 가치의 비대칭이 책의 본질이다. 돈 값을 못하는 책도 있겠지만, 책은 대부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다. 서점은 보통의 상점과 다르다. 비대칭 교환을 본질로 하는 점에서 서점은 학교나 성당과 차라리 비슷하다. 영혼의 높이를 돋움하고 정신의 넓이를 확장하고 감성의 깊이를 그윽하게 하는 곳이다.
“무슨 책을 보유하고 어떤 독자와 만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의 고유성을 이룩하려는 끈질긴 노력 없이 어떤 서점도 존립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서점이 자본의 광풍을 이기고 생겨나도록, 애써서 만든 서점이 사라지지 않도록 여러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의무이자 국가의 도리다. 프랑스나 독일이 독립서점을 돕는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개성 있고 특색 있는 서점들이 우후죽순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의 독립서점 중 우리한테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일 것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서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파운드 등이 드나들었던 장소다. 몰이해 속에서 출판할 곳을 찾을 수 없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세상에 내보낸 곳이기도 하다. 이 서점은 전쟁의 와중에 비록 사라졌지만, 그 정신을 이어받아 1950년대에 현재의 작은 서점이 생겼다. 앨런 긴스버그, 윌리엄 버로스 등이 들르는 곳이었다. 정기 시 낭송회, 티타임, 작가와의 만남이 열린다. 두 해에 한 번씩 자체 문학 축제를 연다. 폴 오스터, 재닛 윈터슨 등이 참여했다. 문학 애호가들의 메카와 같은 서점이다.
‘이본랑베르’ 역시 책 순례자들이 사랑하는 서점이다. 이 서점은 비상업 예술가들의 실험적 작품을 위한 출판사를 겸한다. 이러다 보니 아방가르드한 예술의 생산과 소비와 교류가 함께 이루어지는 작은 성소가 되었다. 아름다운 진열로도 이름 높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자그마한 서점 ‘두유리드미’는 전 세계로부터 엄선된 예술 관련 잡지들의 잔치 마당이다. 작은 공간을 별도로 두고 예술과 관련된 강연, 전시, 토론 등도 진행한다. 개인서재에 대한 맞춤형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하지만 이 서점을 전 세계에 알린 것은 서점 이름이 아름답게 디자인된 ‘에코백’이다. 국내에서도 해외 직구로 몇 차례나 완판되었다.
‘부흐복스’는 세상에서 가장 지역적이고 친환경적인 서점을 내세운다. 대형 서점체인에서 일하던 두 젊은이가 의기투합해서 차렸다. 공장이나 창고 등을 작게 활용하는 서점으로 지역과의 연대를 사명으로 한다. 저소득계층 아동을 위한 모금활동 등 그 지역에 필요한 사회문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일회용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서점으로도 유명하다.
독립 서점의 경쟁력은 가격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단지 책을 잘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공유할 때 독자들은 그 서점을 사랑하게 된다. 서점이 작가나 예술가와 함께한다. 작가나 예술가와 만나 심상한 대화를 나누면서 인정을 붙여가는 사랑방이 된다. 지역사회와 문제를 함께 나누고 해결책을 같이 고민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독립서점들은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잘 알려준다. 여기에 자본의 광풍 속에서 서점이 나아갈 희미한 길이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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