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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기는 침 피하려 누님 안았더니… “고마워, 위로두 해 주구”

입력
2016.10.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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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청소를 마친 주민들이 회관 앞에 모여 새참을 먹고 있다. 수확 철이지만 농산물가격과 벼 수매가 인하 예상 등으로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이번에도 풍년”이란 말은

올해도 쌀값 떨어진다는 협박

요즘 농사꾼이 한자 만든다면

가을에 秋 대신 禍 붙일지도

안개 색이 무겁다. 어두워 보이는 은빛이 금속이라도 품은 듯 진하다. 안개가 진할수록 낮 볕은 뜨겁다. 스님 두피에 화상을 입힐 정도라고 했다. 스님보다 그닥 많지 않은 머리 숱을 가진 사람으로서 조심해야 하는 날이다. 모자부터 챙겼다.

트럭을 출발시키면서 창문을 내리다가 냉기에 놀라 바로 다시 올렸다. 여름에 붙은 손버릇이 아직도 철 없이 하는 짓이다. 더워서 낮잠도 못 자겠다고 궁시렁거리던 입 만큼이나 손도 민망하다. 금방 이렇게 찬바람 무서워할 걸 알면서도 뜨거워 죽겠다고 엄살 떨었던 게 한 달 전이다. 또 그렇게 눈 깜박하면 벌벌 떨며 오뉴월 파리마냥 손 비비고 있을 게 뻔하다. 그 땐 또 그러겠지. “시골 살이 더운 게 낫지 추운 건 아주 딱 질색이여!” 겨울까지 갈 것도 없다. 하루에도 낮이면 덥다고, 밤이면 춥다고 하면서 입 방정이 널을 뛰는 게 요즘이다.

농장에 들어서는데 뭔가 허전하다. 펄쩍 거리며 반겨 줄 희동이가 안 보였다. 덜컥 겁이 났다. 다른 밭에 가서 농작물이라도 해치면 어쩌나 하는 것과 사냥개들한테 물려서 어디 쓰러져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허가를 받아 야간에 멧돼지와 고라니 등을 사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난 봄에 그들이 데리고 다니는 개 4마리가 농장에 들어와 겁 없이 덤비던 희동이를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며 이름을 부르는데 뭔가 확 달려들었다. 희동이였다. 반가워서 안으려는데 펄쩍 뛰더니 내 따귀를 갈겼다. 끌어안으려고 했나 싶었지만 어쩌면 따귀가 목적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족발 먹다가 남은 것 준 이후로 최근에 별식도 안 주고 사료만 먹인 것에 대한 응징일 수도 있다. ‘넌 집 밥만 먹고 사냐’ 이거겠지. 미안한 마음으로 목줄을 끼우는데 다시 뛰어 오르더니 목을 끌어 안았고 밀려서 주저 앉았다. ‘그래 그래 미안하다’ 하며 일어서는데 목덜미 옷깃이 축축했다. 냄새도 났다. 손으로 쓸어보니 황금색이 묻어났다. 볼을 닦아 낸 손등도 같은 색이었다. 축축한 바지도 이슬이 아니었다. 희동이는 다시 나를 끌어 안았다. 이런 개…..

희동이(오른쪽) 모녀

아침부터 홀딱 벗고 옷을 빨았다. 어차피 땀 나면 젖을 옷이니 갈아입으러 집에 가는 것 보다 빠를 것 같았다. 꼭꼭 짜내니 세탁기로 탈수한 정도는 됐다. 대강 추려 입자 마자 H동생이 농막으로 들어왔다. 보여줄 것도 미미하지만 혹시라도 놀랐을 동생을 생각하니 다행이었다. “머 허요?” 뭐 했는지 얘기하기도 그랬다. “응 그냥 쉬어” 동생은 약간 킁킁거리더니 말했다. “요즘 한창 비닐하우스에 거름들 까느라고 냄새가 마이 나요.” 못 들은 척 했다. 동생이 사들고 온 순대와 막걸리를 펼쳤다.

“형님 나락은 괜찮소?” 요즘 누구든 만나면 평소 “밥은 먹었구요?” 처럼 묻는 인사다. 수확 철이 다가온 탓이다. 하지만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맘이 좋지 못하다. 매스컴에 나오는 “이번에도 풍년”이라는 말은 올해도 쌀값 떨어질 지 모른다는 협박으로 들리고, 그 협박은 매번 현실이 돼 왔다. “형님이야 친환경에 직거래로 하니까 좀 낫다고 쳐도, 쌀 값 떨어지면 아무래도 영향이 없겄소.” 동생은 질문과 대답을 본인이 다 해가며 대화를 이끌었다. 나는 끄덕이거나 추임새를 넣을 여유 밖에 없었다. “형님, 내가 엊그제 면사무소 갔더니 뭐라 그러는 지 아요? 애기 엄마가 분식집 차린 얘기를 들은 직원이 다가와서 그럽디다. 농사 그만 짓고 식당 열었다 들었다고. 잘 했다고. 농사 접기를 참 잘 한 거라고. 착잡합디다. 난 농사 계속 지을 건데.”

강한 바람에 쓰러진 벼를 손 쓰지 못한 채 방치하고 있다. 도와줄 인력이 모자라 벼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30여분간 대화를 주도하던 동생이 일어섰다. “형님이랑 떠들고 배도 부르니 좀 낫네요.” “내가 뭐 도움된 게 있나.” 동생을 배웅하고 농장 문에 서서 들판을 내려다보니 제법 금빛이 진하다. 가을 추(秋)자가 벼 화(禾)에 불 화(火)를 붙인 이유를 알겠다. 들녘이 불타 듯 보여서 그리 했을 터이다. 만약 요즘 농사 짓는 사람이 한자를 만들었다면 불 화 대신에 재앙 화(禍)를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수확의 계절이라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고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춤추던 이웃 누님, 고맙다며

쿨렁거리는 눈물 쏟아 내

흔들기 싫어 앉아 있었고

말씀 하시니 들었을 뿐인데…

답답하던 차에 의용소방대 기술경연대회가 고흥에서 열린다고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바람도 쐴 겸, 혹시 바다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기꺼이 참가했다. 기술을 겨룬다기보다 다시 한 번 친목을 다지는 대회였다. 남도의 먹을 거리가 한 곳에 모였다. 20년 전에나 봤던 “일단 잡숴 바” 만병통치약도 나타났고, 비로소 남자임을 느끼게 해 준다는 신약도 있었다. 모처럼 사람들의 얼굴이 밝았고 생기가 돌았다.

전남 고흥에서 열린 의용소방대 행사장 한 켠에서 한 상인이 뱀과 지네 등의 재료로 만들었다는 약을 팔고 있다. 100ml 정도 한 봉에 3만원, 구매자에게 5만원 짜리 약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행사가 끝나고 버스에 올라 의자에 앉는데 허리띠가 퍽 하고 끊어졌다. 살다가 억울한 일도 많이 있겠지만 가장 억울한 일은 먹은 것도 없는데 배부른 일이다. 딱히 점심을 먹은 것도 아니고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집어 먹은 것밖에 없는데 허리띠 다음으로 윗도리 단추까지 떨어질 판이다. 먹은 게 뭐 있다고.

심호흡을 하는데 이장 친구가 손을 끌고 뒷자리로 이끌었다. “야 저 누나들한테 걸리면 내내 흔들면서 가야 돼 이리와.” 유명한 누님들이 차에 탔다. 아까도 노래자랑 순서에 무대 앞으로 가면서도 그냥 걸어가지 못하고 회전과 스텝을 밟으며 나가던 분들이다.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몸을 숨겼다.

작전 실패였다. 숨긴다고 숨겨질 몸도 아니거니와 높은 자리에 큰 얼굴 달고 앉아 있으니 간판처럼 눈에 띄는 게 당연하다. 역시나 한 누님이 흔들면서 다가왔다. 여성 판 가루지기 체형에 하늘로 짧게 뻗은 두 손에는 종이컵 모자를 쓴 초록색 유리병과 닭발 튀김이 들려 있었다. 노래방 음악은 고막과 심장을 동시에 튀기는 느낌이었다. 이장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통로로 나갔다. 누님은 ‘한 놈만 조지자’는 투지로 내 옆에 앉았다. 술과 안주를 먹여가며 나를 꼬셨다. 나는 허리가 아프다며 버텼고, 누님은 마시고 먹이는 와중에도 리듬을 탔다.

의용소방대 행사를 마치고 구례로 돌아오는 버스안. 오락과 운동을 겸한 시간이다.

누님은 결국은 나와 통로를 포기했다. 하지만 옆자리를 뜨지 않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전날 밤샘 근무를 마치고 잠도 못 잤다는 누님은 하소연을 시작했다. “선재아빠 내가 말여”로 시작된 말은 꽤 길고 강했다. 음악소리 때문에 누님은 근접 대화를 이어갔고 내 왼쪽 귀는 입김으로 축축했다. 갑자기 러브샷을 제안하더니 팔만 엮은 채 또 얘기를 이어갔다.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 보니 내 컵이 누님 얼굴 앞에 있었고 발언 중의 타액이 컵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컵을 내 쪽으로 당기니 이번에는 분비물이 얼굴로 날아왔고 고개를 돌리니 다시 귀가 젖었다. 가장 안전한 자세가 안아주는 거였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날아들지 않았다. 갑자기 누님이 울기 시작했다.

“고마워 선재아빠. 얘기 들어 주구 위로두 해 주구.” 당황스러웠다. 흔들기 싫어서 앉아 있었고, 말씀을 하시니 들은 것이고, 방어를 위해 안아드린 것뿐인데 고맙다 하니 미안했다. 게다가 통로와 진동을 사랑하는 누님의 시간을 뺏은 셈이니 더 미안했다. “나 열심히 살어. 앞으루두 열심히 살거구 어르신들 한테두 잘 할겨. 그러다 보믄 자식들 한테라두 복이 가지 않겠나 싶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냥 토닥였다. 누님은 더 쿨렁거리며 울었고 나는 더 미안했다.

부쩍 시도때도 없이 “안아줘”

푸근하고 위로된다는 아내

촉촉하고 냄새나는 누런 것

내 목덜미에 묻힌 희동이도

위로가 필요했던 걸까

억울하게 부른 배는 저녁이 돼서도 가라앉지 않았다. 저녁을 거르고 진정을 시키며 TV를 보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왔다. 못 되게 편집하는 것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인데 좀 나아졌다지만 여전했다. 중요한 순간에 확 몰입하게 되면 광고가 나왔다. 연애시절 여자친구가 잘 익은 고기를 집어 입에 넣어주려기에 눈 감고 입 벌리니 맨손가락만 훅 들어왔던 느낌이다. 그 손가락의 주인공은 옆에서 갱년기 증상을 호소하며 선풍기를 끌어안고 있다. 몸에 열선을 깔고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겨울에 아내를 덮고 자면 되겠다 싶다. 아니면 깔고 자든지.

어느덧 배가 꺼졌는지 출출했다. 하루 종일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은 느낌이라 더 배가 고팠다. 혹시나 하고 치킨 집에 전화 해보니 웬일로 배달을 해 준단다. 그나마 집이 읍에서 멀지 않은 덕분이다. 아내는 날개 하나만 먹고 물러났다. 가끔 아내가 착하다고 느끼게 된다. 나는 좀 다르다. 음식은 남기는 게 아니라는 소중한 가정교육 탓에 기어이 다 해치웠다. 자기 직전에 배가 부르니 하루가 보람찬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자면서 세상이 허무한 느낌이 들었던 건 허기였나 보다.

코딱지만한 무씨가 싹을 틔우고 이파리를 제법 벌리고 있다. 파종 20일만의 성장이다.

채널을 돌리니 유명 강사가 나와 ‘위로’에 대한 강연을 한다. 상대방이 얘기할 때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것보다 자기와 소통하고 자기를 사랑하라는 내용이었다. “괜찮다고,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세요.” 끝으로 강사 자신에게도 슬럼프가 있었고, 지나고 생각하니 그 때가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내심 부러웠다. ‘슬럼프가 있었다’는 말은 ‘지금은 슬럼프에서 벗어났다’는 다른 말이다. 또 슬럼프라는 게 언젠가 극복할 수 있는 어려운 시기를 뜻하는 말이니 일시적인 어려움일 뿐이다. 웬만하면 언젠가 벗어나게 된다. 우리에게 처한 상황도 슬럼프였으면 좋겠다. 정치나 경제도 그렇지만 농촌의 지금이 슬럼프였으면 좋겠다. 잠시 힘들 뿐이라고, 버티면 나아질 게 분명하니 희망을 가지라고 누군가 얘기했으면 좋겠다.

밤을 담아오던 가방 밑이 찢어지면서 밤들이 풀밭으로 굴러 내렸다. 하필이면 비탈에서 밤이 쏟아져 풀섶에 숨은 밤을 찾지 못해 손실이 크다.

누워서 TV를 같이 보던 아내가 갑자기 안아달라고 했다. 뜨끔했다. ‘덥다면서. 배도 부르고 몸도 피곤한데…’ 다행히 그냥 안아달라는 거였다. 앞으로 시도 때도 없이 자주 안아달라 할거라고 했다. 그냥 안는 것 만으로도 푸근하고 위로가 된다고 했다. 하긴 누군가 안을 때 내 살집이 푸근함을 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참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배가 부르면 푸근하고 위로를 받는 느낌인데 아내는 안아줄 때 비슷한 느낌인가 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일까. 누군가 원하면 기꺼이 안아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누가 나 보고 안아달라고 할 것이며 또 아무나 안아주면 싫어할 사람도 있으니 주의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아내가 용서할 수 있는 허그의 대상은 누굴까. 간전댁할머니와 오봉댁어머니 정도?

맞다. 그러고 보니 희동이도 암컷이네. 왜 그렇게 덤벼 댔는지 충분히 알겠다. 으이그 이 놈의 인기는……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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