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고 일부 부작용도 우려되지만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해온 고리를 끊자는 취지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한국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4대 주요 국제대회(동ㆍ하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를 모두 개최한 여섯 번째 나라고 얼마 전 막을 내린 리우올림픽에서 종합 8위를 차지한 스포츠강국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비정상적인 관행들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포츠 4대악(조직사유화ㆍ승부조작ㆍ성폭력ㆍ입시비리) 척결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관치 체육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오래 곪은 화두를 도려내자는 취지는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프로축구연맹은 30일 이런 흐름과 정반대 결정을 내렸다. 상벌위원회를 열고 전북 현대에 승점 9점 감점, 1억 원의 벌과금 징계를 내렸다. 전북 스카우터 A씨는 2013년에 5차례에 걸쳐 두 명의 심판에게 500만원을 건넨 사실이 지난 5월 검찰 수사로 드러났고 28일 법원 판결을 통해 유죄가 확정됐다.
전북 스카우터는 법정에서 “돈은 줬지만 부정한 청탁은 하지 않았다”고 줄곧 항변했다. 프로연맹은 대가성 여부에 대해 검찰과 스카우터 주장이 엇갈린다며 4개월이나 상벌위를 열지 않았다. 결국 법원이 “구단 직원이 심판에게 봉투를 건네는 행위 자체를 묵시적 청탁이라고 봐야 한다”며 스카우터 주장을 일축했다. 하지만 상벌위는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 한 구단 관계자는 “4개월 동안 상벌위를 미뤄 온갖 논란을 야기하고 오늘 7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해서 나온 결론이 고작 이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북은 여전히 “구단은 전혀 몰랐다. 개인의 일탈이다”고 하지만 스카우터가 자기 돈 들여가며 심판 용돈을 주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시각은 괜한 의심이 아닌 지극히 합리적인 의혹 제기다. 조남돈 상벌위원장도 “스카우터 급여 수준(8,000만원)에 비춰볼 때 1회 100만원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며 이번에 금품수수를 한 심판들이 이전에도(2014년 경남FC 대표이사로부터 금품 수수) 이미 부정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점을 미뤄볼 때 청탁이 없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전북 구단이 최소 묵인한 것 아니냐는 정도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상벌위가 가벼운 처벌을 내린 결정적인 이유는 심판들이 실제 승부조작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판에게 돈을 건네는 행위가 바로 승부조작의 시작이라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딜레마라는 주장도 있다. 경남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전 대표이사가 코치를 통해 4명의 심판에게 6,400만 원을 건넨 혐의가 발각돼 승점 10점 감점, 벌금 7,000만원 징계를 받았다. 전북은 경남에 비해 매수자 직급이 낮고 금품 액수도 적으니 더 무거운 징계를 내릴 수는 없다는 논리다. 법리적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작년과 이번에 내려진 두 번의 징계를 보면 과연 프로연맹이 심판 매수 행위에 엄단의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한국 스포츠는 ‘클린’을 외치며 달리는데 K리그만 반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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