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관보 불출석 사유서 제출…직무대행 과장 등 5명도 안 나와
정부 “증인 자격 상실” 유권해석
피감기관 증인없는 초유사태…野 “청와대가 국감 무력화 시도”
국정감사장에 피감기관 증인이 한 명도 출석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미르재단 의혹 등을 살펴봤던 대통령 직속 특별감찰관 소속 직원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 직전 면직되면서 불러들일 증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야당은 즉시 특별감찰관실 현장 검증을 벌였지만 미르재단 의혹 내사와 관련해 아무런 정황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법사위는 30일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박범계 의원이 새누리당 권성동 위원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받아 특별감찰관실에 대한 국정감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전날 오후 2시까지도 ‘출석 가능’을 답했던 백방준 특별감찰관보는 국감 직전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뒤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백 감찰관보의 직무를 대행해야 하는 감찰과장 등 5명은 사유서마저 제출하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 이들의 불출석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퇴직으로 백 감찰관보 이하 직원들 모두 직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인사혁신처의 유권 해석에 따라 기관증인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전 특별감찰관은 우병우 민정수석 감찰 내용을 언론에 유출했다는 논란 속에 사표를 제출했고, 청와대는 국감을 앞두고 그의 사표를 수리됐다.
당초 미르재단 의혹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개입했는지 등을 추궁할 예정이던 야당은 ‘청와대의 국감 무력화 시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박 의원은 “특별감찰관법은 살아 있는데 특감 이하 직원들이 없는 정말 코미디와 같은 현실이 벌어졌다”며 “백 특감보에게 (국감 불출석의) 압력 혹은 회유가 가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이후 현장검증을 의결하고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있는 특별감찰관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에서 파견된 운영지원팀장의 “답변할 권한이 없다”는 말만 30여분간 들었을 뿐이다. 박주민 더민주 의원은 “정부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입법부의 감사 및 비판 기능을 무시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국감 보이콧 상황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야당 간사에 사회권을 이양하지 않고 버텼다. 의사 출신인 신상진 미방위원장이 “‘위원장은 위원회의 의사일정과 개회 일시를 간사와 협의해 정한다’고 규정한 국회법 49조 적용이 ‘위원장이 의사진행을 거부ㆍ기피할 때 타 교섭단체 간사가 직무를 대행한다’는 같은 법 50조에 우선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의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국회법 50조가 규정한) 직무 수행을 거부ㆍ기피한 게 맞아 야당 간사가 회의를 진행하는 데 법적 다툼의 여지는 없다”며 의사봉을 야당에 넘긴 것과는 정반대 논리다. 결국 미방위는 이날 예정된 일정을 진행하지 못했다.
박홍근 더민주 간사는 “올해 발간된 ‘국회법 해설’, ‘국회선례집’을 보면 1990년, 2004년에도 현재와 유사한 상황이 있었지만 모두 당시 야당 간사가 위원장 직무를 대행했다”며 신 위원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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