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그래도 지급하라” 압박
보험사 “법 위에 금융당국” 불만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보험사와 고객들이 벌여온 법정공방에서 대법원이 “지급 의무 없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자살보험금 지급은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소비자들은 금융당국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반면, 보험사들 내에서는 “법 위에 금융당국“이란 불만들이 터져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교보생명이 고객 A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상고심에서 “A씨의 자살보험금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지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원심판결을 30일 확정했다.
A씨는 2004년 5월 종신보험에 가입했던 부인이 2006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자 보험사로부터 보험 주계약에 따른 일반사망보험금 5,000만원을 받았다. 특별약관(보험가입 후 2년이 경과한 후 자살하면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에 따라 1,000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보험금 추가 지급을 청구한 건 2014년이었다. 보험사는 “보험금 청구권은 보험사고가 발생한 후 2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끝난다”는 조항을 들어 지급을 거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채무자인 보험사가 시효 완성 전에 A씨의 권리행사를 어렵게 만들었거나 A씨가 객관적으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정이 없었다”는 1, 2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보험사들이 지급하지 않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규모는 지난 5월12일 현재 2,244억원. 보험사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상당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제재라는 또 다른 산이 앞에 놓여있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소멸시효에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며 압박해온 금감원은 이날 판결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이 법적 책임은 피했지만 약관을 잘못 기재해 소비자 피해를 초래한 데 대해서는 행정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초 보험사들이 약관에 ‘보험가입 후 2년이 지난 후 자살하면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표시해놓고도 ‘자살은 재해가 아니다’라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을 미룬 탓에 소멸시효가 지나간 것인 만큼 소비자에게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날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사들과 그렇지 않은 보험사간 제재 수위가 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 상품을 판매해온 14개 보험사 중 7곳(ING, 신한, 메트라이프, PCA, 흥국, DGB, 하나)은 이미 당국 압박에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 교보, 한화 등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왔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판결이 나오면 금융당국의 입장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제재수위를 더 강화하겠다고 해 ‘법 위의 금융당국’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경영진들이 행정처분을 감수하고서라도 원칙을 고수할지, 배임 논란에도 보험금을 지급할지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박지연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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