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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에 대한 불신과 남 탓하는 풍조가 억울함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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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에 대한 불신과 남 탓하는 풍조가 억울함 키워”

입력
2016.09.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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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근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모든 사건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억울함의 원인과 타당성 여부를 따져보면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타커스 제공
유영근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모든 사건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억울함의 원인과 타당성 여부를 따져보면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타커스 제공

“재판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억울하다’입니다. 억울한 걸 풀어주는 게 판사의 임무인데 억울함의 정의는 무엇이고 한국인이 유난히 억울함을 많이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야 잘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최근 ‘우리는 왜 억울한가’(타커스)를 펴낸 유영근(47)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부장판사는 법원 사무실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디까지 개인의 억울함이 수용될 수 있는지 밝혀보고 싶었다”며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에서의 억울함’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에는 사회학도 출신 법률가가 바라본 억울함의 사회적 분석을 담았다.

억울함은 영어로 옮기기 어려운 단어다. 흔히 공정하지 않고 부당하다는 뜻의 ‘unfair’로 번역하지만, 이 영어 단어는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나 인식을 뜻해 ‘억울함’에 담겨 있는 주관적 감정은 전달하지 못한다. 유 판사는 억울함에 ‘unfair’에 감정을 뜻하는 ‘feel’을 결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억울함이 이성적 판단과 개인적 감정의 사이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감정과 판단의 중간에 ‘심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억울함도 그러한 심정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심리학’을 쓴 최상진 교수는 ‘자신이 부당한 피해를 봤다는 사실에 대해 수용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라고 억울함을 정의했어요.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피해 심리에서 피해의 기준이 주관적이며 사회정의보다 심정 논리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고 본 것입니다.”

한국인이 유난히 억울함을 많이 호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 판사는 한국인이 심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서이기도 하지만 권력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여긴다. “권력의 판단과 개인의 감정 사이의 간격이 크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느끼는 일이 많은 듯합니다. 벌어진 틈이 넓다는 건 권력이 잘못 판단하는 일이 많거나 개인의 감정이 잘못 형성되는 일이 많거나 둘 중 하나 때문이겠죠. 이것이 법조계에 대한 불신 요인이고 사회의 불안 요인이 됩니다. 그 간격을 줄이려면 법조계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만 주장하지 말고 억울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이 왜 생겼는지 성찰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유 판사는 책 머리말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외침으로 유명한 탈주범 지강헌과 횡령과 탈세, 사기로 70억원 이상의 이득을 봤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를 비교한다. 7년형 선고를 받고 3년 만에 가석방된 데 이어 사면ㆍ복권된 전 대통령의 동생을 보며 556만원을 훔친 죄로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은 탈주범이 느낀 억울함에는 공감할 만한 구석이 없을까. 유 판사는 “무고하고 선량한 사람의 억울함뿐 아니라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범죄자의 억울함에도 공감할 만한 구석이 있다”며 “법률가가 절대로 한 쪽에 동조하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지만 억울함을 꼼꼼히 들을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이 토로하는 억울함에는 여러 상황이 혼재해 있다. 타인의 잘못이나 제도의 불합리함 때문에 부당한 피해를 보아 억울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단지 서러운 감정을 억울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억울함을 얼마만큼 들어줘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판사의 역할이다. “법률가들이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이 법조에 대한 불신이나 공권력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억울함과 서러움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까지 남의 탓이라 여기는 인식 또한 개선돼야 합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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