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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1989년의 어떤 날

입력
2016.09.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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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새끼다람쥐 같던 시절이라 나는 전교생 중 제일 먼저 학교엘 도착했다. 운동장을 두다다다 가로질러 학교 건물 앞에 닿으면 꼭 나보다 먼저 출근한 교장선생님이 화단을 청소하고 있었다. 10분씩 20분씩 앞당겨보았지만 늘 교장선생님보다는 늦었다. “니는 뭐할라꼬 이래 빨리 오노.” 선생님이 물으면 “그냥요.” 그렇게만 대답했다. 같이 화단 청소를 하고 현관 계단에 앉아 우유를 같이 마셨다. 나는 층마다 복도의 형광등을 켜며 4층 맨 동쪽 끝 3학년 10반 교실까지 뛰어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시원했고 고요했고 가끔 덜 빤 대걸레에서 냄새가 피어올랐다.

학생과장은 아이들의 앞머리에 칙칙 분무기를 뿌렸다. 헤어스프레이로 바짝 세운 앞머리는 폭삭 주저앉았고 핑클파마를 한 앞머리는 꼬불꼬불해졌기에 금방 가려낼 수 있었다. 핑클파마들은 모조리 교무실로 끌려갔다. “3학년 10반, 느그들이 젤 문제야. 담임 때문에 야들이 더 이라는 거 아이가.” 학생과장이 쯧쯧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스물여섯 살 담임은 그 어떤 날라리 여자애들보다 앞머리를 더 높게 치켜세우고 다녔으며 스커트는 기가 막히게 짧았다. 보라색 스커트를 입는 날이면 보라색 스타킹을 신었고 15개 정도의 액세서리를 한꺼번에 걸치는 여자였다. 학생과장이 핑클파마들을 잡아가고 나면 담임은 뒤에서 중얼거렸다. “촌스럽긴.” 빈 집을 청소하고 혼자 우유 한 잔을 마시고, 문득 거울을 보니 화장기 하나 없는 내 얼굴이 촌스러웠다. 그래서 그 시절 생각이 잠깐 났나 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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