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는 언론이 정부 정책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민감한 부처 자료들이 공개되고 정책 담당자들의 입장을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됐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평가하고 싶었던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는 정부 의지’였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소송과 KTX 여승무원 소송 등으로 공론화된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한 정부 태도가 특히 궁금했다. 비정규직 중 우리나라는 파견과 용역을 합친 비율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8.9%(2012년ㆍ한국노동사회연구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 압도적으로 1위인 나라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감에서 파견ㆍ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정부 의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26일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문건 하나를 공개했다. 문건은 고용부가 조선업체 불법파견 근로감독을 실시한 2014년 5월 현대중공업(원청)이 하청업체에게 전달한 안내문. “고용부가 현대중공업과 사내하청간 도급거래 설문자료를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국감장에 참고인으로 나온 한 하청업체 대표는 이 문건을 받은 경위를 설명하며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의 소장, 총무, 경리 등을 불러 ‘이런 질문에 이렇게 써라’라고 교육하고 설문지는 근로감독관이 아닌 원청업체를 통해 전달한다”고 했다. 고용부의 불법파견 관리 감독이 형식적인 설문조사로 이뤄지고 이마저도 원청과 하청업체간 짜고치기식으로 진행된다는 노동계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와 증언이었다.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심이 들지만 고용부는 조선업 하청업체의 불법 파견을 처음으로 감독한 2004년 이래 한번도 불법 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간접고용 문제 해결에 대한 당국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국감을 앞두고 여당 의원에게서도 지적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에 따라 고용부는 2013년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사업장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시행’하겠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불법파견 확정 판정을 받은 사업장 8개 중 고용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한 사업장은 2곳밖에 안 된다는 것이 장석춘 새누리당 의원의 설명이다. “일부 민사소송(근로자지위 소송) 판결은 확정 판결로 보기 어려워 근로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고용부 해명에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비정규직 문제, 특히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이런 소극적 태도는 ‘좋은 일자리’를 선도적으로 만들어야 할 공공 분야조차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6월 원자력 발전소 설비를 관리하는 한수원 하청 노동자 7명과 송전선로를 점검하는 한전KPS 사내하청 노동자 10명에 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몇 달을 끌며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았다. 5,6년 동안 소송 끝에 법원 판결에 따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오히려 기간제 계약을 제안(한전KPS)하거나 판결 취지에 어긋나는 무기계약직(한수원)으로 선심 쓰듯 발령을 내기도 했다. 요즘 민간기업보다 비용절감 압박에서 자유로운 공공기관들도 어떻게 하면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않을까 고심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
‘진짜 사장님을 찾아달라’는 노동계 구호가 상징하듯 간접고용 남용 방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안정된 일자리 창출보다는 나쁜 일자리라도 늘어나기만 하면 좋다는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은 한 문제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이왕구 사회부 차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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