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9월 30일
회의주의(Skepticism)는 인류의 이성이 광신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도록 붙들어준 인식론의 하나다. 회의주의는 회의주의 자체를 포함, 어떠한 관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질 수 있고, 또 가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누구나 오류를 저지를 수 있고, 아무도 선과 진실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대 계몽주의와 이성적 과학주의, 더 앞서 르네상스의 인문학이 소크라테스의 저 회의주의-“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다만 알 뿐이다”-에 뿌리를 두고 성장해왔다.
회의주의의 건너편에 종교가 있다. 종교인은 우선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신의 말씀과 지침을 따라야 한다. 믿음의 완성은 의심의 극복이 아니라 무조건적 수용이며, 회의와 의심은 악마의 유혹일 뿐이다. 의심이 낳는 최악의 범죄가 ‘신성모독(Blasphemy)’이다.
고대-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저 종교의 단죄에 희생돼왔고, 심지어 21세기의 오늘날까지 이슬람근본주의 국가뿐 아니라 문명의 선두국가군들이 모여 있다는 유럽연합 국가들과 미국의 주들 상당수가 실정법으로 신성모독을 범죄시한다. 영국의 한 출판인은 1977년 예수를 동성애자로 묘사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미국 오클라호마 와이오밍 등 일부 주들도, 수정헌법과 연방 대법원이 있어 실효성은 없지만,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는 법안을 유지하고 있다.
탐구센터(CFIㆍCenter for Inquiry)는 회의주의와 세속적 휴머니즘의 철학자 폴 커츠(Paul Kurtz)가 1991년 설립한 국제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CFI는 과학과 이성, 지식 추구의 자유와 의학ㆍ보건 등을 포함한 인본주의적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9년 CFI는 9월 30일을 ‘신성모독의 날(Blasphemy Day)’로 제정ㆍ선포했다. 개인과 단체가 종교와 세속의 신성모독 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그 비판의 행위를 격려하자는 취지의 날이다. 거기엔 종교의 도그마를 극복하자는 것뿐 아니라 종교가 억압해 온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려는 의미도 있다. 그들은 종교적 터부를 건드리는 전시회와 강연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매년 펼쳐왔다.
“우리는 불쾌감을 주려는 게 아니다. 대화와 논쟁 과정에 누군가 불쾌감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불쾌해지지 않을 권리가 인권은 아니지 않은가.”그 해 토론토 대회를 주도했던 SFI의 인사가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