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형 수업 낯선 교사ㆍ학부모에
우수 사례로 뽑힌 교습법 전수
영양교사 ‘가상 자소서’ 써보고
라디오극 만들며 국어 능력 키워
어려운 수학, 섬 홍보하며 재밌게
짝궁 얘기로 영어 예문 만들기도
전국 47만명의 중학교 1학년들이 이번 학기부터 자유학기를 맞았다. 오전에는 국어 영어 수학 등 교과 수업을 토론, 실습 등 학생 참여 형식으로 진행하고, 오후에는 주로 진로탐색 등 체험활동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학생참여 수업의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교사도 학생도 참여형 수업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난감한 건 마찬가지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27일 서울 아현중학교에서 교원 및 학부모 200여명을 대상으로 ‘2016 서울형자유학기제 수업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에서는 미리 자유학기제를 실시한 학교 중 우수한 수업사례로 뽑힌 교사들이 ‘수업 비법’ 전수에 나섰다.
국어-이름 가리고 친구 글 평가, 라디오극 만들기
국어교사인 김선희 명일중학교 수석교사는 학생들의 글을 독특한 방식으로 평가한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쓴 글의 이름을 모두 가린 채 친구들이 글만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것.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쓴 글은 우수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의 글 실력은 낮은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김 교사는 “익명 평가는 선입견을 깰 뿐 아니라, 아이들이 다른 사람이 쓴 글도 많이 읽도록 해 ‘글쓰기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글쓰기를 위해 ‘영양교사 되기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학생들이 모두 대학졸업 후 영양교사에 지원하는 상황을 가정해 지원 동기, 향후 활동 계획,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 이유, 대학 재학 중 활동 등을 자기소개서에 쓰도록 했다. 이 ‘가상 영양교사 채용’의 2차 전형에서는 일주일 치 식단을 작성하고, 마지막 관문에서는 모둠별로 요리 경연을 벌인다. 또 요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다시 글로 쓴다. 국어와 가정이 만난 융합수업인 것이다.
‘라디오극 만들기’도 호응이 좋다. 아이들이 등장인물의 성격, 나이, 직업을 정하고 사건의 공간 시간적 배경을 정해 대본을 쓴다. 낭독 연습도 하고, 실제로 녹음도 한다. 김 교사 학교의 학생들은 언어폭력으로 인한 갈등과 화해 과정을 라디오극으로 만들기도 했다. 학생들은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배경음악, 음향효과 등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다. 상대 배역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지고 학교 생활에서 잊지 못할 추억도 함께 만들 수 있다.
수학-섬 홍보자료 만들기, 수학 용어로 시 쓰기
수학 담당인 서유정 동작중학교 교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수학을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통계 단원에서는 학생들에게 섬 넓이를 가지고 통계표를 만들도록 하고, 그 중 하나를 골라 홍보자료도 만들게 한다. 모둠별로 홍보자료를 만든 아이들은 앞에 나와 “비금도에는 모래와 소금과 로맨스가 있습니다”라며 신나게 섬을 홍보한다. 기본도형 단원에서는 선에 대해 배운 후 한글 서체를 만들어보고, 삼각형 사각형을 이용한 디자인도 해본다. 수학과 미술을 동시에 배우는 것이다.
서 교사는 수학을 시와도 접목시킨다. 동작중 한 학생은 ‘유리수 생활’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언젠가는 끝이 있고/ 언젠가는 반복되는/ 유리수 같은 생활/ 학교 갔다, 학원 갔다, 집에 오는/ 순환 소수 같은 생활/ 언젠가는 헤어지고 머리에서 잊혀질/ 유한소수 같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수학으로 인성교육까지 시킬 수도 있다. 서 교사는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여서 면이 된다는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에게 동그라미 모양 스티커를 나눠주며 그것으로 자기 이름과 장래 희망을 글자로 만들도록 했다. 남학생들은 “이런 거 왜 해요” “다 붙이려면 팔 아프니 펜으로 쓸게요”라며 투덜댔지만, 서 교사는 “스티커가 모여서 글씨가 완성되는 것처럼 너희들 인생도 하루 하루가 모여서 가수 의사 꿈이 만들어지는 거야”라고 설명해줬다. 서 교사는 “자신이 붙인 스티커를 발표하게 하자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며 큰 목소리로 발표했다”며 기억에 남는 수업으로 꼽았다.
영어-나만의 순위 만들기, 짝꿍끼리 예문 만들기
영어를 담당하는 이석영 대방중학교 수석교사는 “자유학기에는 절대 모든 내용을 가르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학생 참여로 이뤄지는 수업은 하나를 배우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교사는 학습내용을 5, 6명으로 이뤄진 모둠별로 토론하도록 한다.
그 뒤 아이들마다 각자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도록 하고, 왜 그 내용이 자신에게 중요한지 설명하도록 한다. 이렇게 할 경우, 아이가 모든 학습 내용을 외우진 못하더라도 자신이 1순위로 꼽은 것은 확실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 과정을 힘들고 귀찮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교사는 “그룹 토론, 나만의 순위 만들기, 말하기 등을 통해 아이들의 고등 사고능력이 더 길러진다”며 “수많은 잡다한 지식 중 핵심을 뽑아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영어 예문 만들기에도 아이들을 참여시킨다. ‘to 부정사’에서 not의 위치를 가르칠 때 짝꿍과 협력해 규칙을 적용한 예문을 써 보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짝꿍끼리 ‘I told you not to swim on the bathroom floor’(욕실 바닥에서 수영하지마)라는 예문을 만들어낸다. 이 교사는 “교사가 선택한 예문에는 집중력이 떨어지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로 영어 예문을 만들 때는 모두 집중하는 등 아이들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학부모는 학교서 체험한 것 좀 더 생각할 여유 줘야”
이날 콘서트에 참여한 교사들은 강의에서 들은 구체적인 사례를 자신의 학교에서 적용해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부모들 역시 자유학기 수업에 대한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한 모습이었다. 중1 자녀를 둔 어머니 김모(40)씨는 “국어시간의 라디오극과 음식 만들고 글 쓰기가 인상 깊었다”며 “오늘 선생님들이 강의해 준 것 정도만, 아니 반만 실현돼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우려도 여전하다. 중1 학부모 차모(43)씨는 “자유학기 취지는 동의하지만, 모든 학교에서 오늘 사례들처럼 양질의 수업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 점은 불안하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날 콘서트에서 ‘자유학기 운영의 실제’를 강의한 신명숙 관악고등학교 교감은 “자유학기제는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학부모의 손에도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며 “하교 후 바로 학원에 보내면 학교에서 체험을 했던 내용을 전부 잊어버리게 되고, 생각이 자랄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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