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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악산은 절을 품고, ‘모티’길은 나를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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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악산은 절을 품고, ‘모티’길은 나를 안고…

입력
2016.09.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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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비로전 3층석탑. 김천시 제공/그림 3김천 직지문화공원 전경. 김천시 제공
김천 직지사 비로전 3층석탑. 김천시 제공/그림 3김천 직지문화공원 전경. 김천시 제공

김천 가을여행 하면, 천년고찰 직지사와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 안은 황악산이 으뜸이다. 직지사는 전통적으로 김천 관광의 최강자인데, 그런 직지사는 황악산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환상의 ‘복식조’다. 직지사 하면 황악산을, 황악산 하면 직지사를 아니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직지사는 오랫동안 가을 수학여행의 대명사였고, 직지사를 왔으면 으레 황악산 정상은 아니더라도 그 등줄기 어디쯤까지는 밟아보고 돌아가는 게 예사스런 일이었다. 김천관광의 기본틀은 변하지 않았다. 세월의 부침은 여전하다. 해외여행 붐이 일었지만 세계화의 물결 속에 직지사는, 황악산은 건재했을 뿐만 아니라 부단히 변신을 꾀했다.

변화무쌍한 세월에도 의연히

직지사 산문 아래에는 불교 신자들이 아니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큼지막한 직지문화공원이 생겨 종교불문하고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고, 직지사 상가에는 커피가게가 줄지어 생겨 젊은 여행객들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최근에는 사찰 앞에선 터부시됐던 고깃집도 오픈해 어르신을 동반한 가족단위 여행객을 맞고 있다. 외형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꾀하지 않은 곳은 황악산 뿐이지만, 새천년 들어 불어닥친 대한민국 걷기 열풍은 전국의 워커(walker)들을 황악산으로 불러 모았다.

황악산을 찾았다가 직지사 풍경을 오랜만에 본 여행객들은 열에 아홉은 격세지감을 이야기 한다. ‘엄마야, 포도밭이 멋진 공원으로 변신했네!’ 직지사는 그만큼 잊힌 명소였고, 그 사이 몰라보게 달라진 명소인 것이다. 사실 직지사를 여행한다는 것과 황악산을 오른다는 것은 그저 보고 그저 걷는 것만은 아니다.

10년 사이 달리진 외형은 차치하고 직지사가 품은 사연과 황악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더없이 보람된 가을여행이 될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단풍은 10월 중순쯤 절정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이왕이면 단풍나들이를 나서면 좋겠다.

직지사는 황악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111m)울 중심으로 왼쪽으로 선유봉 천룡봉 운수봉이, 오른쪽으로 형제봉 신선봉 망월봉 그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 울긋불긋 단풍이 들 때 경내에 들어서면 지상낙원에 들어선 듯 기분이 좋아진다.

왕건과의 인연 얽힌 ‘동국제일가람’

직지사 상가에서 직지사 입새에 다다르면 제일 먼저 맞는 것이 ‘東國第一伽藍黃嶽山山門’이라 씌어진 웅장한 현판이다. 이 현판은 직지사의 위용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인데, 황악산도 동급으로 새겨져 있다. ‘동국제일가람’이란 말 속엔 고려 태조 왕건과의 인연이 흐르는데, 이는 직지사가 급성장하게 된 드라마틱한 사연을 담고 있다.

927년 왕건은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대패하고, 당시 직지사 주지였던 능려 대사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능려 대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직지사의 운명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중대결심이었기 때문이다. 능려는 왕건의 기백 하나를 보고 돕기로 했다. 군사들에게 짚신 3천 켤레를 삼게 하고 짚신짝을 하얀 눈밭에 뿌려 짚신을 줍기 위해 견훤의 군졸이 대오를 흩트리자 이 틈을 타 왕건이 황궁이 있는 개성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했으며 불리한 전세를 만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왕건은 후삼국 통일 후 직지사에 전답 1천결(1결 2,753평)을 내려 은혜를 갚았다. 이후 직지사는 고려왕실의 지원 속에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리고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이라고 불리게 됐다.

가을의 고즈넉함과 포근함

직지사는 숭유억불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도 조선 8대 가람으로 이름을 떨쳤다. 직지사 주지였던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공을 세운데 따른 후광이었다. 직지사엔 사명각(四溟閣)이 있다. 사명대사의 영탱을 모신 곳으로 정조 11년(1787)에 세웠다. 벽면에는 사명대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 가지 이적을 보이며 왜인들을 감복시키고 백성들을 구출해 오는 과정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사명각은 대웅전 옆 단풍나무 군락에 옆에 자리해 있어 단풍철에는 그 어울림이 제법이다.

이동형 홍보 담당은 “직지사는 천년고찰인 만큼 대웅전 삼존불탱화 3층탑 등 보물급 유물 같은 볼거리도 풍부하다”며 “가을을 맞아 직지사를 찾는 여행객들은 사찰의 고즈넉함과 황악산이 주는 포근함을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훈 기자 s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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