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위험 줄였고 자금 보유” 자신, 자산 매각으로 돌파구 마련 안간힘
獨정부 구제금융 EU법에 발목
전문가 “최악 상황 가지는 않을 것”
건전성 위기에 빠진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가 글로벌 증시를 연일 쥐락펴락 하고 있다. 지난 26일(이하 현지시간) 주가 폭락으로 유럽 증시 전체까지 가라앉혔던 도이체방크는 27일 극적인 자회사 매각 카드로 반등하며 유럽 증시를 다시 상승세로 돌려 세웠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쇼크를 생생히 기억하는 세계 금융시장에 초대형 은행의 위기는 그만큼 민감한 셈이다. 도이체방크 측은 여전히 “구제금융도, 증자도 필요 없다”며 회생을 자신하고 있지만 진퇴양난에 빠진 글로벌 금융 공룡의 향방에 시장은 잔뜩 숨 죽이는 분위기다.
28일 유럽증시는 도이체방크가 영국 내 자회사인 애비생명보험을 피닉스그룹에 12억달러(약 1조3,100억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에 앞서 이틀 동안 1~2%대 동반 하락을 딛고 일제히 상승 출발했다. 26일 7.5%나 폭락했던 도이체방크 주가가 1.8% 상승세로 출발하자 독일을 시작으로 영국(한국시간 오후 11시 현재 0.8%), 프랑스(1.1%), 이탈리아(0.9%) 증시가 모두 반등세를 보였다.
이날 존 크라이언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언론 인터뷰에서 “구제금융을 받을 일도, 증자도 필요 없다”며 거듭 자신감을 강조했다. 하지만 2007년 주당 100유로가 넘던 도이체방크 주가가 최근 10분의 1 수준까지 추락한 것은 그만큼 시장의 우려가 높다는 걸 반증한다. 마찬가지로 이날 보험 자회사 매각 역시 위기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여전하다.
이는 도이체방크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줄곧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77억달러에 달했고, 올해 상반기 순익도 전년 동기 대비 20%나 줄었다. 설상가상으로 도이체방크가 2008년 금융위기 직전 미국에서 판매한 주택모기지담보증권(RMBS)에 대한 불완전판매 혐의로 최근 미국 법무부로부터 140억달러 규모의 벌금을 부과 받으면서 급기야 파산 우려까지 높아진 상황이다. 140억달러는 도이체방크의 충당금 적립액(약 62억달러)의 두 배, 최근 시가총액과 거의 맞먹는 금액이다.
시장은 도이체방크가 과연 벌금을 감당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정상화를 위해선 추가 자금 확충이 불가피한데 결국 유럽중앙은행(ECB)이나 독일 정부의 구제금융 투입 없인 불가능할 거란 게 중론이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도 쉽지 않다. 유럽연합(EU) 법은 은행 부실 시 채권자가 손실을 떠안은 후에야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 이 법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은행들의 건전성 위기에 유로존이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것을 꺼려한 독일 정부가 주도해 만든 방어막이었는데, 지금은 되레 자국 은행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부메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도이체방크가 쓰러질 경우, 세계 금융시장에 미칠 막대한 파장 때문에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경제지 포춘은 “이른바 ‘대마불사’가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면서도 결국 독일 정부의 개입을 예상했다. 주요 외신들도 미 법무부가 도이체방크와 비슷한 규모의 불완전판매 혐의를 받은 골드만삭스에 대해 처음 벌금의 절반 수준인 50억6,000만달러로 낮춰줬다는 점을 집중 거론하며 도이체방크에도 적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벌금 감액과 분산 납입이 이뤄진다면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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